속도 붙은 탈원전…"LNG·신재생 늘리면 에너지 안보 위협"

국가 전력수급 계획을 조언하는 총괄분과위원회가 2034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40%로 높이고 원전 비중을 10% 미만으로 낮추는 내용의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지난 8일 발표한 것과 관련해 크게 4가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원래 지난해 말 확정됐어야 하지만,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져 해를 넘겼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번 전력수급계획에서 신재생 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정부가 해법 마련을 서두르지 않으면 국가 에너지 안보가 흔들릴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중단된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3·4호기 예정지.

①전력공급 불안… 해외 의존도 높아져 에너지 안보 위협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전력공급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다. 이번 전력수급계획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과 LNG 발전 비중을 늘린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신재생 에너지는 전력공급 안정성이, LNG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는 날씨 같은 외부 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간헐성이 특징이다. 발전효율도 원전과 석탄보다 떨어진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간헐성과 발전효율 탓에 한국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은 최대 3시간이며 나머지 21시간은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했다.

신재생 에너지를 보완해줄 발전원으로 지목받은 LNG는 국제유가의 영향을 받아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게 단점이다. 지금은 유가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유가는 글로벌 경기, 중동 정세, 산유국의 감산 정책, 전염병 발병 등의 영향을 받아 급등락을 거듭하기 때문에 LNG 또한 가격 안정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이번 전력수급계획에는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신재생과 LNG의 역할이 커지면서 국가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NG의 경우 연료와 설비 모두 해외 의존도가 높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전과 석탄발전은 관련 설비와 기기 모두 국산이고 연료만 해외에서 수입한다"면서 "반면 LNG는 연료는 100% 수입하고 설비 또한 지멘스, GE 등 글로벌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연료는 물론 기술과 설비까지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두산중공업이 LNG 발전소 핵심 설비인 발전용 가스터빈을 개발 중이지만, 해외 경쟁자를 따라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가스터빈의 원리는 항공엔진과 거의 비슷해 개발과 상용화까지 꾸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탈원전 정책과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이 LNG 가스터빈에 예전만큼 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이 개발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②친환경 중심 에너지 전환이라면서…"LNG, 온실가스 배출 주범"

이번 전력수급계획이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주요 목표는 친환경 발전을 확대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는 것인데, LNG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되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석탄 발전보다는 낫지만 LNG도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LNG는 석탄보다 온실가스를 약 45% 적게 배출한다. 다만 LNG는 가스 추출과 운반 과정에서 메탄을 뿜어내 지구 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에너지모니터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LNG 발전 확대 움직임이 향후 지구 온난화에 미칠 영향은 석탄 발전보다 클 수 있다"며 "LNG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유해하다"고 했다. 호주 정부는 2015년부터 호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년 늘어난 원인으로 LNG 발전 확대를 꼽기도 했다.

이덕환 교수는 "신재생 에너지의 간헐성 탓에 LNG 발전이 늘면서 역으로 온실가스를 더 배출할 우려가 있다"며 "LNG 발전소는 2차 미세먼지의 발생원인 중 하나인 질소산화물을 대량 배출한다"고 꼬집었다.

③값싼 원전 비중 낮추면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

발전단가가 비싼 신재생과 LNG 발전이 늘면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전력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들이는 구매단가인 전력도매가격(SMP)은 에너지원의 발전단가가 좌우한다. 전력거래소의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1인당 원자력 정산단가는 60.7원, 신재생에너지는 88.5원, LNG는 114.6원이다. 결국 늘어난 비용은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탈원전 정책이 지속될 경우 전기요금이 현재 대비 2030년 23%, 2040년 38%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국민 부담은 2030년까지 약 83조원, 2040년 28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원전과 석탄은 산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내몰려 관련 기업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국가 대표 원전 기업인 두산중공업은 국책은행의 지원에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원자력이 생명 안전성 관점에서 가장 뛰어난 저(低)비용 청정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직시하고 신한울 원전 3·4호기를 포함한 원전을 9차 계획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④전력 수요, 매해 1%만 증가한다고?… "4차산업혁명에 수요 급증할 것"

전문가들은 총괄분과위원회가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가 올해부터 2034년까지 연평균 1%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부분도 문제삼았다.

위원회는 지난해 기준 90.3GW(기가와트)인 전력 수요가 매년 평균 1% 증가해 2034년 104.2GW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2017년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전력 수요가 1.3%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증가세를 0.3% 내려잡은 것이다.

올해는 전례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전력 수요가 줄었지만, 향후 10년간은 자율주행차 확산 등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증권사의 에너지 담당 애널리스트는 "수요가 매해 1%만 늘어나리라고 보는 것은 상당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