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패션부문, 분기 적자 310억원…IMF 이후 최악
의류 2·3차 협력업체, 코로나발(發) 구조조정 예상
"코로나19로 회사가 난리가 났습니다."
지난 7일 만난 한 의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 직원 박모(38)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회사는 이날 직원 한명이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 모든 직원을 귀가 조치했다. 오후 2시쯤이었다.
직원들은 집으로 돌아가 6시까지 근무했다. 하지만 디자인·수출 등 사무실 또는 현장 업무가 대부분이고 일감이 줄어 딱히 집에서 할 일이 없었다.
이 회사는 코로나 사태로 물량이 대폭 줄어 주 4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체 임직원 월급도 15%가량 삭감했다. 지난해 매출 5000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최악의 실적이 전망된다. 주로 미국·유럽 등 의류 브랜드에 OEM 방식으로 상품을 생산·공급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해외 주문 물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현금 흐름이 불안해 임직원 월급을 걱정할 판이다.
◇ 의류 내수 판매는 물론 수출 급감
이런 상황은 박씨가 다니는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의류 업체 대부분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내수 판매가 급격히 줄었고, 해외 의류 브랜드에 OEM 형태로 상품을 제조·공급하는 업체도 주문 물량이 대폭 줄어 인력 조정, 월급 삭감 등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코로나로 인해 올해 1분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매출은 전년 대비 21% 감소한 3570억원을 기록했고, 31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적자전환했다. 이에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매년 3월 봄 시즌을 맞아 진행하던 대규모 마케팅을 전면 중단했고, 무급 휴가 제도를 확대 실시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이렇게 안 좋은 적이 없었다"며 "최근 소비자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판매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LF도 지난 2월 초 코로나 확산 전과 비교해 매출이 두 자릿수 줄었다. 온라인 채널이 선방했지만 오프라인 매장 매출 비중이 높아 1분기 실적 전망이 어둡다. LF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원들이 3월부터 자발적으로 급여의 30%를 회사에 반납하고 있다.
업계에선 코로나발(發)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미 인력 조정은 시작됐다. 한세실업은 3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했던 신입사원 공채 면접을 중단했다. 한세실업은 7일 직원 한명이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회사 전체 직원이 이날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오는 11일 상황을 보고 직원들의 출근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세실업은 의류 OEM 업체로 미국 등 해외 수출 물량이 전체 매출의 80~90%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 등 의류 브랜드 매장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셧 다운' 된 상태다. 최근 매장 문을 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해외 의류 브랜드 물량이 줄어든 만큼 한세실업의 실적 악화도 예상된다.
신성통상은 최근 수출사업부 직원 22명을 권고사직 처리했다. 탑텐, 지오지아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신성통상은 의류 부문 매출 중 30%가 해외 물량이고, 수출사업부 직원은 220명 정도다. 한솔섬유도 희망퇴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코로나발(發) 의류 산업 구조조정
업계에선 해외 의류 브랜드와 직접 거래하는 한세실업, 한솔섬유 등 국내 OEM 업체들은 자금력이 탄탄해 코로나 사태를 이겨낼 수 있지만, 이들과 거래하는 원단, 편직, 염색 등 소규모 2·3차 협력업체들은 현 위기를 버틸 힘이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물량 감소는 물론 국내 의류 OEM 업체들이 발주처인 해외 브랜드에게 약속한 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그 피해가 2·3차 협력업체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국내 의류 OEM 업체들이 해외 브랜드로부터 받지 못한 납품대금이 1억2000만달러(약 1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섬유 수출 물량도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섬유수출 물량은 9억9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8% 감소했다.
지난 3월 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 확산에 따른 한국 의류 협력업체(벤더) 섬유 산업을 살려 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미국 의류 브랜드들이 일방적으로 구매를 취소하고 대금지급을 거부하고 있고, 국내 의류 벤더들이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며 "실업 위기에 내몰린 의류 벤더 산업 종사자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유리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중소 의류 협력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면서도 "무조건적인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코로나 이후 의류 산업의 핵심 추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이동할 것"이라며 "내수 판매 업체는 물론 OEM 형태의 생산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 모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온라인 전략을 지금부터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