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임상시험 중 최소 6건 환자모집 목표 못채워
동아대병원 임상승인 2주 동안 한명도 모집 못해
임상대상자는 3000명인데 현재 치료환자는 1332명

국내에서 진행 중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치료제 임상시험 9건 중 적어도 6건이 당초 계획했던 피실험자 모집인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화되면서 신규 감염자가 줄어들고 완치율이 높아져 모집 가능한 환자 수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코로나19 유행 막바지에 들어간 치료제 임상… "환자 부족해 임상 데이터 못 밝혀"

4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병원 등 6개 병원과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 부광약품 등 2개 제약사가 모두 9건의 임상승인을 받았다. 식약처가 공개한 이들 9건의 임상시험 대상자는 총 3000여명에 이른다. 이날 0시 기준 국내에서 치료중인 코로나19 확진자 1332명을 모두 동원해도 절반도 채울 수 없는 상황이다.

조선비즈 취재결과 이 가운데 최소 6건은 당초 계획한 임상환자를 충분히 모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상승인을 받은지 한달이 넘은 한 병원은 환자를 모집하지 못해 임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있는 대학병원 3곳은 임상 환자를 충분히 모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대병원은 지난달 21일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 국내 코로나19 중증 폐렴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치료제 '페로딜'의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2주가 지난 이날까지 단 한 명도 모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식약처 승인을 받고 폐렴 환자 84명을 대상으로 치료제 '후탄'의 임상을 진행하기로 한 경북대병원 관계자도 이날 "모집인원을 채우기가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환자 수가 부족해 임상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현지시각으로 지난 1일 긴급사용을 승인해 주목받고 있는 치료제인 렘데시비르 관련 국내 임상 3건도 상황은 비슷하다. 앞서 지난달 30일 권준욱 질본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정례브리핑에서 "서울대병원이 이 (렘데시비르) 임상에 참여해 환자 20여명이 임상시험을 받고 있다. 그외 (개발사인) 길리어드 주도의 임상시험이 중증 및 중등도 환자를 대상으로 수십명 규모로 실시되고 있다"고 밝혔다.

20여명이 참여 중인 서울대병원이 렘데시비르 임상은 당초 100명을, 수십명이 참여 중인 길리어드사이언스 주도 임상 2건은 총 195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초 임상에 들어갔음을 감안하면, 두달이 지난 이날까지의 모집률은 20~50% 수준이다.

지난 3월 초 150명의 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승인을 받은 서울아산병원은 인원 모집 현황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2건의 임상시험을 승인 받은 고려대구로병원 등 3건을 진행중인 기관에서는 회신을 주지 않았다. 이날까지 9건 중 최소 6건의 임상이 모집 환자 미달 상태로 파악된다.

가장 큰 이유로는 코로나19의 일일 신규 환자가 10명 미만으로 줄어들고 격리해제 인원이 늘면서 자연스레 모집 가능한 환자 수가 줄어든 것이 꼽힌다. 질본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격리 입원 환자는 1332명이고 이 중 위중·중증 환자는 27명이다.

반면 식약처에 따르면 9건의 임상이 모집하려는 환자는 지난달 27일 기준 총 3000여명으로 현재 치료를 받아야하는 환자수의 2배가 넘는다. 그중 임상 대상 중증 환자는 88명으로 실제 위중 중증환자수의 3배를 넘는다. 지난달 12일부터 격리 입원 환자 수는 매일 줄어들고 있다. 치료제 임상은 일정기간 동안 규칙적인 투약을 받아야 해서 한 명의 환자가 여러 임상에 중복 참여하기도 어렵다.

◇정부 임상승인 속도냈지만… "2차 유행 대비해 개발 계속해야"

지난 2월 코로나 환자를 대상으로 렘데시비르 임상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중국에서는 환자 모집 미달을 이유로 지난달 임상 2건을 중단했었다. 길리어드는 임상 중단 사유에 대해 "중국내 코로나19 확산이 잘 통제됐고, (중증환자 조건에) 적합한 환자를 모집할 수 없다"고 밝혔었다

물론 의도했던 인원수를 모으지 못했다고 무조건 임상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집인원은 임상시험 의뢰자가 '목표 시험대상자 수 선정근거'에 따라 당초 필요하다고 판단한 환자의 표본 숫자이다. 따라서 계획한 인원을 모으지 못하면 임상 데이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모집인원이 모자랄 경우 적은 임상 데이터로 실험을 진행할지, 충분한 환자 모집을 위해 임상기간 연장신청을 할지, 중단 할지는 임상 의뢰자가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임상 데이터가 부족할 경우 '통계적 유의성'이 낮아져 약물의 유효성 입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적 유의성은 데이터의 통계가 얼마나 의미를 갖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 데이터 수가 많을수록 유의성이 높아진다.

정부는 임상승인 기간을 줄이면서까지 치료제 개발을 지원하고 나섰지만 정작 임상환자 모집난이 걸림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통상 1~2개월 걸리는 식약처 임상승인 기간(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기간)을 이달부터 1주일 이내로 단축하겠다고 했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환자수가 줄어드는 것은 분명 좋은 상황이지만, 임상 진행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고 2차 유행도 대비해야 하므로 치료제 개발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환자가 적은 지금을 오히려 2차 유행에 대비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며 "기존 임상 데이터를 재분석하는 등의 대안을 찾고, 해외 임상연구를 참고해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할 신약을 고르는 등의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을 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지난달 24일 임상시험 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 대상 환자 수가 제한되는 상황에 대비해 임상지원의 우선순위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식품의약처가 발표한 지난달 27일 기준 코로나19 치료제 국내 임상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