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암리 채용 관행 깨고 채용 사이트에 정식 공고
중국 HKC·차이나스타, 내년부터 TV용 OLED 양산 LG·삼성과 정면승부
BOE도 준비 중… 중소형 라인을 전환하면 이르면 2022년부터 시장 진입

#1. 최근 복수의 국내 채용 사이트에 한국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전문가를 구한다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공고가 올라왔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됐다. 그동안 중국 업체들이 헤드헌터를 통해 암암리에 한국 기술자를 영입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공식적인 채용 사이트를 통해 직무·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고가 논란이 됐던 또 다른 이유는 OLED가 국가핵심기술이라는 점이었다. 관련 기술자가 중국으로 간다는 것은 곧 OLED 기술이 새 나간다는 것이다.

#2. 업계에서는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가 네 번째 중소형 OLED 공장으로 건설하려던 ‘B15(중국 푸저우 소재)’를 대형 OLED 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BOE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형 OLED를 연구·개발(R&D) 중이며, 중소형·대형 업황을 봐 가면서 전환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경영난으로 매물로 나온 CEC 판다라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의 강력한 매수 후보로 BOE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대형 OLED 시장 진입을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CEC 판다가 보유하고 있는 옥사이드(Oxide·산화물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술을 OLED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 있는 BOE의 10세대 LCD 공장 전경. BOE는 물량공세로 세계 LCD 시장에서 한국 업체들을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대형 OLED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잰걸음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이 시장은 현재 LG디스플레이가 100% 독점 공급 중으로, 삼성디스플레이가 QD(퀀텀닷)라는 기술을 활용해 시장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한국 업체들을 밀어내고 저가 물량공세로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을 장악한 중국 업체들이 이제 한국 업체들이 주력하고 있는 OLED 시장까지 동시에 곁눈질하고 있는 것이다.

문대규 순천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중국은 LCD에서 핵심 인재를 영입한 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한국을 밀어냈다"며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대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LCD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로서도 많이 남는 장사가 아닌 만큼 같은 공식으로 OLED 시장을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라고 했다.

대형 OLED 시장에서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업체는 중국 HKC다. HKC는 중국 업체 중에서는 최초로 후난성 창사시에 대형 OLED 생산라인을 짓고 있으며 내년부터 대량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디스플레이 업체 차이나스타(CSOT)도 대형 OLED 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블루 OLED를 발광원으로 QD 컬러 필터를 얹어 색 재현력을 높인 QD-OLED를 양산하겠다고 밝힌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래픽=정다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업계는 BOE의 참전도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BOE는 10억위안(약 1700억원)을 투자해 LG디스플레이가 만들고 있는 화이트올레드 방식의 대형 OLED 기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스톤파트너스 이사는 "삼성디스플레이가 QD디스플레이를 개발 중인 만큼 BOE가 이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BOE가 B15를 대형 OLED 생산라인으로 전환할 경우 TV용 패널 양산이 2022~2023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진입 여부와 별개로 LCD보다 기술 난도가 높기 때문에 쉽게 추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옴디아 집계에 따르면, TV용 LCD 시장은 BOE를 비롯한 중국 업체가 40% 가까이 장악하고 있다(출하량 기준). 한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대만에도 밀린 상황이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LCD 기술력만 놓고 보면 여전히 한국 업체들의 수준이 높은 게 사실"이라면서 "기술이 앞서는 것과 시장이 커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 만큼 한국 업체들은 이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