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특수목적고등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는 A(남·24)씨는 얼마 전 학교에서 개인정보에 접근 가능한 업무에서 빠지라는 지시를 받았다. 평소 학교에서 학부모 민원 업무 등을 담당해 온 그는 민원인의 개인정보 일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됐다.
A씨는 "기존 일을 못하게 되서 출근해서 서류 정리, 팩스 보내기 등 단순한 일을 처리하다 집에 간다"며 "하는 일마다 담당 선생님의 지시와 관리를 받아야 하고, 일이 없을 때는 게임만 하다 갈 때도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B(남·41)씨는 얼마전 인사 부서로부터 5월 배치될 사회복무요원에게 업무용 PC를 주지 말라는 내용을 전달 받았다. 이 기관 인사 부서에서는 복지 업무 특성상 개인정보 취급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PC를 주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B씨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인력이 부족한 부분을 일부 해결해 주고 있었는데, PC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 아예 우리 부서에서는 할 일이 없다"며 "사회복무요원들 데려다 놓고, 책상 정리, 쓰레기통 비우기나 하라고 해야할 판이다"라고 했다.
최근 일부 공공기관에서 소속 사회복무요원이 기존의 업무를 하지 못하고, 방치돼 인력이 낭비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일 병무청은 사회복무요원의 정보화 시스템 접속 및 이용, 복부 기관 업무 담당자의 사용 권한 공유 등을 금지하는 복무 지침을 발표했다.
병무청의 새 지침은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넘겨 구속 기소된 전(前) 사회복무요원 최모(26)씨 때문이다. 최씨는 서울 한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증·초본 등 발급 업무를 담당하면서 204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하고, 이 가운데 17명의 개인정보를 조주빈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조주빈은 이 개인정보를 피해자 협박에 사용했다.
사회복무제도는 1995년부터 운영해오던 기존 공익근무요원 제도를 개선해 2008년부터 시행한 것으로, 공익이 주로 행정기관의 단순 사무보조 역할을 지원했다면, 사회복무요원은 사회복지시설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복지 전문가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독일의 '민사복무제도'에서 따왔다.
원칙적으로 사회복무요원은 개인정보를 단독으로 취급할 수 없도록 복무 규정에서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병무청의 지침은 사회복무요원의 원래 취지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업무 현장에서는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오는 사회복무요원이 (지침 하달로) 제기능을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 느낌"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병무청이 사회복무요원을 잘 배치했다면 제도 취지에 맞는 운영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모씨 같은 문제로 병무청이 지침을 발표했지만, 이미 많은 사회복무요원들이 권한을 넘어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의 불만도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병무청 지침대로라면 공적 마스크 판매의 전산 작업 등을 돕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은 해당 업무가 불가능하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가 제도를 빌려온 독일에서는 일종의 '사전 직업 훈련'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사전에 (사회복무요원들이) 어떤 시설에서 내 어떤 재능을 살려 일할 수 있는지 선택하고 조율하게 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군 복무 개념인데다 깜깜이, 선착순으로 배치돼 집 근처 아무 곳에서나 아무 일이나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 연구위원은 "각 기관들은 사회복무요원의 조직과 인력, 권한은 없지만 예산이나 위험부담은 떠안아야 한다"며 "사회복무요원들의 현장 배치나 인력 운영 권한을 병무청이 아니라 현장을 잘 알고 소통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