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동결·인상률 낮아진 직장인들, 4월 건보료 폭탄에 '한숨'
'빚으로 버티는 5월' 올해도 반복될 듯… 생활비 수요 겹쳐
'보복소비' 기대하지만 소비심리는 여전히 금융위기 후 최저
9년차 직장인 권윤민(36세·남)씨는 지난달 25일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15만원 가량 내던 건강보험료가 45만원으로 껑충 뛰면서 월급이 30만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료 정산금이 4월에 집행되면서 공제금액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권씨는 "올해 연봉 인상률도 거의 동결 수준인데 갑자기 월급이 대폭 줄어드니 좀 당황스럽다"며 "양가 부모님과 자녀에게 쓸 비용으로 70만원 정도를 계획했는데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4월 급여에 건보료 정산분이 반영되면서 '건보료 폭탄'을 맞은 상당수 직장인들이 5월에 보릿고개를 넘게 됐다. 건보료 정산은 재작년 소득을 기준으로 지난해 건보료를 적용하다가 올 초 연말정산 후 지난해 소득이 확정된 후 그간 덜 냈거나 더 낸 건보료를 정산하는 것이다. 올해는 더 내야 하는 직장인이 돌려받는 사람보다 세 배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4월부터는 지난해 최종소득을 기준으로 한 건보료를 납부하게 돼 공제액이 늘어나게 됐다.
많은 기업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해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율을 대폭 낮춘 상황이다.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로 소비가 대폭 늘어나는 달이어서, 그외의 소비에는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직장인도 적지 않다. 매년 5월은 늘어나는 소비에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달인데, 올해는 생활비 수요까지 겹쳐 빚으로 버티는 이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직장인 60% 4월 건보료 더 내
지난달 급여일에 건보료 정산금을 납부해 월급이 줄어든 직장인은 전체 급여소득자의 60%에 이른다. 이들이 추가로 내는 돈은 평균 약 15만원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직장가입자 1495만명 중 지난해 보수가 늘어난 892만명은 지난달 건보료를 추가 납부하게 됐다. 건보료를 돌려받는 직장인은 319만명(9만7000원)으로, 건보료를 더 낸 사람이 돌려받는 사람보다 2.7배가량 많다.
과거에도 매년 4월 '건보료 폭탄'이 예고됐지만 직장인들의 느끼는 체감 부담은 크지 않았다. 건보료 정산을 통해 추가로 돈을 더 내게 된 직장인은 지난해 소득이 늘어난 것이니 불만을 가질 일은 아니란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말 성과급을 상당액 수령한 일부 직장인은 건보료 추가 납부를 큰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이 임금인상률을 낮추거나 동결하는 경우가 많아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005930)는 임금인상률을 지난해 3.5%에서 올해 2.5%로 낮췄고, LG전자(066570)도 4.3%에서 3.8%로 내렸다.
직장인 중에는 수십만원씩 건보료 납부가 늘면서 기본적인 가계지출도 부담이 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2년차 직장인 최모(28세·여)씨는 "지난해 초과근로 수당이 대폭 늘면서 임금이 1년 전보다 높아졌는데 건보료 정산액을 70여만원 더 냈다. 당장 월세나 기본적인 공과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한 상황"이라고 했다.
◇'빚으로 버티는 5월' 올해는 생활비 수요까지
직장인들은 통장잔고가 줄었음에도 어린이날·어버이날을 맞아 상당한 수준의 소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20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가정의달인 5월에 평균 46만원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기혼은 66만원, 미혼은 38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코로나19로 지난해보다 15%(직장인 평균) 줄어든 것이다.
부모님 용돈과 자녀 선물 등으로 일시적인 소비가 늘더라도 소비심리가 긍정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4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70.8%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1월(104.2)에 비해 무려 33.4포인트(P)나 급감했다. 2월 -7.3P, 3월 -18.5P, 4월 -7.6P로 연거푸 내렸다. 특히 소비자심리지수 중 소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소비지출전망(87)은 한국은행이 월간 소비자심리지수 공표를 시작한 2008년 7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5월 연휴를 기점으로 보복소비(외부적 요인으로 억눌렸던 소비가 분출되는 현상)를 기대하지만 소비심리는 여전히 코로나19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가 늘면서 매년 5월에 신용대출이 급증하는 일은 올해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월 은행권의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 증가액(전월대비)은 평균 2조23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월 평균 증가액(1조6500억원)보다 약 30% 많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여행·숙박·항공업종에서 무급으로 휴직한 근로자가 많아 대출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고미숙 신한은행 명동역지점 부지점장은 "코로나 19로 타격을 받는 업종 종사자의 경우 무급휴가까지 늘고 있어 소액 생활비 대출 신청이 늘고 있다"며 "5월에는 지출이 늘어나는 반면 소득은 급감해 경기가 더 침체될 경우 가계 경제가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은행권의 가계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은 0.30%로 한 달 전보다 0.01%P 상승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신용대출 등) 연체율은 0.51%로 0.04%P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