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학력 가린 블라인드·AI 채용 늘자 중고신입 눈에 띄어"
코로나에 채용 축소... 無경력자 취업 문턱 높아져

지난해 LG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모(31)씨는 대학 졸업 후 우체국에서 18개월간 근무하다 퇴직하고 외국계 자동차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갔다. 대학 동기들보다 월급도 더 받고 '저녁 있는 삶'도 보장됐으나 이씨는 2년 만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섰다.

"매일 반복되는 단순 업무가 지겨워 좀 더 활동적인 직무로 방향을 틀어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어요. 두 차례 본 면접 모두 면접관들은 제 경력을 눈여겨봤고, 전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준비된 직장인임을 강조했죠." 이씨는 다른 회사에서 근무했음에도 경력직이 아닌 신입으로 입사한 전형적인 '중고신입'이다.

졸업 후 3년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최모(27)씨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청년 대부분은 경력 없는 학생들인데 기업들은 점점 더 경력을 쌓은 중고신입을 원한다"며 "기업 인턴 채용만 해도 경력이 없는 지원자들이 드문데 기업 신입 공채에서는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신입 공채를 몇 번씩 통과해 본 경력자들이 같은 채용 시장에서 경쟁하니 경력 없는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기회조차 잘 오지 않는 게 현실이에요."

◇신입사원 고령화… "업무적응력이 나이보다 중요"
코로나 여파로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올해 취업 문이 크게 좁아진 가운데 경력을 쌓고 이직하는 중고신입이 그나마 기업의 선택을 받을 전망이다. SK그룹의 한 인사담당자는 "코로나 이후 기업들은 최소한의 교육을 통해 당장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소수의 인원만 뽑으려 할 것"이라며 "중고신입들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미 취업 시장은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 인턴 경력 등을 중요시하면서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높아지는 추세다. 4일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30.9세로 20년 전 평균 25세보다 5살 이상 높아졌다. 롯데와 삼성에서는 지난해 34~35세 신입 사원이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 5대 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기업들도 점차 블라인드 선발이나 인공지능(AI)을 추진하다 보니 업무 적응 능력을 우선 순위에 두고 지원자의 경험과 경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생활을 해 본 지원자와 안 해본 지원자는 몇 마디 말만 나눠봐도 쉽게 구별이 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2015년부터 운영 중인 블라인드 채용 전형이 이제는 자리 잡아 지원자의 직무 수행 능력과 역량만을 평가해 실무형 인재를 선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회사나 직무와 관련된 과제를 내주고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중고신입이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를 낼 확률이 높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조선DB

신입 공채에 나이가 많은 중고신입들이 섞이면서 기업 문화도 바뀌고 있다. 선배보다 나이 많은 후배가 늘어나면서 회사 선·후배 문화도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쪽으로 변하고, 선배라도 업무와 관련된 지시는 예의를 차려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한 황모(29)씨는 "같은 동기여도 나이 차이가 8살까지 벌어져 선배들도 나이 많은 동기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서로 더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코로나에 무경력 취업 준비생들 문턱 높아져

코로나라는 대형 암초까지 등장하면서 경력이 없는 청년 중에서는 올해 취업을 사실상 포기한 이들이 많다. 올해 삼성을 제외한 기업 대부분은 채용 규모를 예년보다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는 올 상반기 대졸 공채를 진행하지 않으며, CJ그룹도 코로나 여파로 아직 채용 일정을 잡지 못했다. KT는 매년 두 차례 진행한 정기 공채를 올해부터 폐지하고 수시·인턴 채용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항공사들의 신규 채용은 모두 멈췄다. 매년 2~3월 항공사 채용 규모를 발표하는 국토교통부의 담당 관계자는 "항공사들의 상황이 워낙 나빠 채용 계획 조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권도 올해는 상반기 공개채용을 미루고 수시 채용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