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안녕'은 안정·평안 의미…지명·행정구역명에 들어간 '안(安)'과 '녕(宁)'
그 지역이 안정적이고 조용하길 바라는 의미 내포
사회에 역병이 돌거나 재난이 있게 되면 우리가 그동안 늘상 해왔던 인사말 '안녕하세요'의 의미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그야말로 '그새 안녕하세요?'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흔히 하는 인사말 안녕하세요의 '안녕(安寧)'의 의미는 대략 '몸이 건강(康∙강)하고 마음이 편안(寧∙녕)한 상태'를 뜻하므로 두 글자를 합쳐 '강녕(康寧)'이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중국에서 안녕이라는 말의 뜻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중국어로 '안녕(安宁∙安寧)'이라 하면 '사회에 소요같은 사태가 없는 등 질서(秩序)가 안정(安定)적'이거나, '생활이 평온(平稳)하고 조용(宁静)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어의 안녕(安宁)과 비슷한 중국어 단어는 안정(安定), 온정(稳定) 등이 된다. 한국어의 '안녕(安寧)'을 중국어로 굳이 바꾸려면 평안(平安), 안호(安好) 정도가 비교적 가깝다 하겠다.
그래서 중국 곳곳 땅이름(地名)과 행정구역의 유래를 들여다 보면 '안(安)'과 '녕(宁)'의 글자가 들어 있을 때 '그 지역의 질서(秩序)가 안정적이고 중앙의 권력에 골칫거리가 되지 않게 조용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내포된다.
'녕하(宁夏)'는 탕구트인들이 11세기에 세운 하(夏) 지역이 안정적이고 조용하기를 바라며 13세기 원나라가 붙인 이름이다. 탕구트인들은 자기땅을 대하(大夏)라고 했는데 중국 관점에서는 서하(西夏)라는 명칭으로 통한다. 중국인들이 중화민족의 원류로 생각하고 그 존재를 믿는 고대 왕조 하(夏)나라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에서 '녕하'는 34개 행정구역중 하나이고 중국 서북부의 관문이다. 정식 명칭은 '녕하 회족 자치구'이다. 회족(回族)의 종교적 연결고리는 회교(回教∙이슬람교)이다. 녕하의 원래 이름은 녕하로(宁夏路)였다. 로(路)라는 행정구역 개념은 과거 도(道)라는 행정구역 개념을 송나라 때부터 바꾼 것이다.
중국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한 글자로 행정구역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그 자동차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과거 한국의 승용차 번호판에도 행정구역 표시가 되어 있었다. '녕하 회(回)족 자치구'에 등록된 자동차 번호판에는 '녕(宁)' 글자가 붙어있다.
역시 중국의 34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청해(青海)성(省)'에 등록된 자동차 번호판에는 청(青) 글자가 붙어 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내륙 호수인 청해호가 있기 때문에 청(清)나라 때부터 청해라는 행정구역이 되었다.
청해성의 수도(首府)는 '서녕(西宁)'이다. 서녕이라는 땅이름에는 '서쪽 변방(西陲∙서수)의 안녕(安宁)'을 바라는 중앙 권력의 희망이 들어 있다. 청해성은 양자강(장강)과 황하의 발원지이고 청해성(青)과 티베트(藏) 사이에 청장 고원(靑藏高原∙티베트 고원)이 있다. 청해성 지역에는 원래 강(羌)인들이 살았고 티베트 계열의 토번(吐蕃)인들이 살았다. 당(唐)나라에서 토번(吐蕃) 땅으로 가는 길을 당번고도(唐蕃古道)라 불렀다. 이 길에 서녕이 있다.
당나라때 본격적으로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 글로벌 차원의 교류 및 교역을 했다. 당나라의 장안(서안)에서 서역으로 가고 오려면 길고 좁은 현재의 감숙성(甘肃省) 회랑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회랑을 북동쪽과 남서쪽에서 각각 위협하는 지역이 바로 '녕하'와 '서녕'이다. 그러므로 녕하(宁夏)와 서녕(西宁) 지역이 안정적이고 조용하기를 바라는 중앙 권력의 바람이 이해가 되는 바이다. 서녕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100년경 북송때부터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제 중국의 남쪽으로 가본다. 현대 중국이 베트남(월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에 34개 행정구역중 하나인 '광서(广西) 장(壮)족 자치구'가 있다. 광서 장족 자치구의 수도(首府)는 '남녕(南宁)'이다. 남녕이라는 지명에는 '남쪽 경계(南疆∙남강)의 안녕(安宁)'을 바라는 중앙 권력의 의지가 들어 있다. 녕하로와 마찬가지로 원나라가 남녕로(南宁路)라는 행정구역을 설치했다.
옛 중원(中原)의 중국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절강성부터 동남쪽 연안 지역은 통틀어 '백(百)월(越)'이라 부르는 변방 땅이다. 지금의 강소성 지역은 춘추전국 시절 오(吴)나라이고 강소성 남쪽 절강성 지역은 춘추전국 시절 월(越)나라이다. 오월쟁패, 오월동주 등 이야기의 배경이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가며 한월(邗越), 구월(瓯越), 민월(闽越), 낙월(骆越), 남월(南越)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백월(百越) 중에서 남녕 지역은 지금의 베트남(越南∙월남)과 접하는 남쪽경계이고 그 지역 안녕의 의미가 바로 '남녕(南宁)'이다.
동북의 만주 지방으로 올라간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요동(辽东)반도는 요하(辽河) 강물의 동쪽이고 그 서쪽은 요서(辽西)이다. 앞에 발해만 바다가 있다. 북방의 거란은 이 지역으로 밀고 내려온 후 장성 이남까지 차지하고 나라 이름을 요(辽)라 했다. 거란의 전, 후로도 많은 북방민족이 대륙 중원 공략의 거점으로 삼은 곳이 바로 요하 유역이다. 중국의 중앙 권력이 언제부터 '요녕(辽宁)'이라는 지명을 공식화했는지는 불분명한듯 하다. 그러나 요녕의 의미가 '요하(辽河)지역의 안녕(安宁)'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요녕(辽宁)성(省)은 현대 중국의 34개 행정구역중 하나이다.
'녕(宁)'을 좀더 포괄적인 '안녕'의 의미로 쓴 곳 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안휘성의 '녕국(宁国)시' 지명은 옛부터 발견되는데, '만국(万国)이 모두 안녕(咸宁∙함녕)'이라는 주역의 내용이 땅이름으로 되었다. 호북성에는 당나라때 '영원한 안녕'이라는 뜻의 '영안(永安)' 지명이 있었고, 이 지명은 훗날 송나라때 '모두 안녕' 의미의 '함녕(咸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화북 지방에서 몽골로 넘어가는 요충지에 '집녕(集宁)'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때에 집녕로(集宁路)라는 행정구역이 설치되었다. 의미는 '화목(集)'과 '안녕(宁)'이다.
이밖에 지명에 녕(宁)을 넣으며 '자연 재해로 부터의 안녕(安宁)'을 기원하기도 했다. 산동성에는 제(济) 글자가 포함된 지명이 많다. 제수(济水)라는 강이 있고, 춘추전국 시대 주나라가 강태공에게 봉토로 준 봉건국이 제나라이기 때문이다. 현대 산동성의 수도(首府)는 제남(济南)이다. 옛부터 제수가 범람하는 적이 많았는데, 원나라는 제수 범람지역의 지명을 제주(济州)에서 '제녕(济宁)'으로 바꾸었다. '제수(济水)의 안녕(安宁)'이라는 의미이다.
'녕파(宁波)'는 상하이 인근의 항구도시로 세계 최대의 해운 물동량을 자랑한다. 명나라 때 이 지역의 지명이 녕파로 바뀌었는데, '파도(波)의 안녕(安宁)' 뜻을 담고 있다. 이 지역에 있던 항구 이름 '진해(镇海)'를 참고했다고 한다. 진해 역시 '바다(海)를 진정(镇)시키다'는 뜻이다. 현재 '녕파(宁波)시(市)'에 '진해(镇海)구(区)' 지명이 남아 있어 그 의미를 후대에 전한다.
장강(양자강) 하류의 남경(南京)은 송나라, 명나라, 중화민국의 수도였다. 고대에 장강의 지류들이 모여드는 이곳에 '강녕(江宁)'이라는 지명을 붙였고 이 땅이 나중에 남경이 되었다. 지금도 남경시를 한 글자로 줄여 '녕(宁)'이라 칭하며, 남경시 '강녕(江宁)구(区)'가 남아 있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GM∙CJ의 국내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