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분양가 통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제를 선택하는 사업장이 늘어나는 가운데, 건설회사는 울고 정비사업 조합원은 웃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정비사업 수주전이 과열되다보니 후분양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건설사가 떠안겠다고 나오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를 피하기 위해 최근 임대 후 분양전환이나 후분양 방식을 검토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건설사들도 이를 겨냥해 후분양에 유리한 조건을 담은 제안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 부산 범천1-1구역 재개발 시공사 선정에서 현대건설은 분양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며 수주에 성공했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 수주전에 뛰어들었던 호반건설도 자체 자금을 동원해 후분양도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포스코건설은 오는 5월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인 신반포21차 재건축 조합에 공사비를 대출 받지 않고 시공사 자금으로 지어 후분양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 같은 방식의 후분양은 조합원의 분양수익은 늘려주지만, 비용 부담은 시공사가 떠안는 구조다. 조합이 대출을 받아 내야 할 공사비를 시공사가 우선 자체 자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조합은 이자 비용을 아끼는 반면 시공사는 해당 자금의 이자만큼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정공사비가 1000억원인 재건축 사업을 시공사가 건축비를 대 후분양하는 경우, 초기에 자금을 먼저 일으키고 연 대출금리를 2%로 가정할 경우 공사기간 3년 동안 발생하는 이자가 60억원 정도다. 조합원이 200명이라면, 1인당 사업비를 3000만원씩 절약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수주 한 건이 아쉬운 건설사들은 이를 감수하면서 정비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후분양을 원하는 조합이 느는 데에는 최근 성공적인 후분양 사례가 잇달아 나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 용산구 '나인원 한남'이 대표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각한 용산구 한남외인아파트부지를 대신증권 계열사가 매입해 개발한 이 아파트는 최근 아이돌그룹 빅뱅 소속인 지드래곤 등 유명 연예인의 이사 소식이 전해지며 '유엔빌리지' '한남더힐'과 함께 한남동의 '초고가 주택 트로이카'로 자리잡았다.
시행사인 DS한남은 지난 2017년 12월, 인근 한남더힐의 시세를 기준으로 3.3㎡당 6360만원에 분양보증을 신청했다. 그러나 HUG가 분양가 상한선을 4750만원을 내걸자 몇 차례 협상 끝에 4년 임대 후 분양전환하는 임대아파트로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후분양은 공정률이 60% 이상이고 시공사 2곳 이상이 연대보증을 제공할 때는 HUG의 분양보증을 받지 않아도 돼, 분양가 심사도 면제된다. 공사를 100% 마친 준공 상태라면 연대보증도 필요 없다. 건설사가 자체 자금으로 공사를 마무리할 경우에는 준공승인을 받을 때 지자체의 분양가 심사만 통과하면 된다는 뜻이다.
선분양을 포기하고 분양전환 임대아파트로 지은 나인원 한남의 분양전환가격은 3.3㎡당 평균 6100만원으로 책정됐다. 당초 HUG가 선분양 조건으로 제시한 것보다 30% 가까이 비싸고, DS한남이 당초 제시한 분양가에 근접한 액수다.
나인원 한남과 비슷한 시기에 HUG와 분양가 협상에 실패했던 동작구 '상도역세권 롯데캐슬'도 오는 5월 분양에 나선다. 지역주택조합 주택사업인 이 아파트는 3년 전 계획한 분양가보다 더 높은 가격대에 후분양을 진행할 전망이다. 그 사이 주변 시세가 큰 폭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 집계를 보면, 지난 2017년 10월 기준으로 5억7000만~6억2500만원이던 인근 '상도 더샵 1차'의 전용면적 59㎡형의 매매 시세는 지난 24일 기준으로 8억7000만~9억5000만원으로 50% 가까이 상승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통상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받아 충당하는 각종 건설비용을 시공사가 감당해야 하는만큼, 재무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후분양 조건으로 대단지 아파트를 짓기는 쉽지 않다"면서 "다른 사업 등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을 조합에 무상으로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에게 이익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