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뒤 스스로 건넨 휴대폰서 과거 범행 증거... 피고인은 자백
판례는 "현행범 임의 제출 땐 영장 없어도 증거능력 갖는다"는데
2심 "현행범이 증거 스스로 내놓겠나"... 심리 없다가 선고 때 돌연

대법원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다투지 않아 심리조차 이뤄지지 않은 증거능력을 법원이 직권으로 문제삼아 부정한 것은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경찰이 현행범 체포 뒤 임의 제출받은 휴대폰에서 추가 범행 증거가 나와 문제됐는데, 정작 피고인은 영장 없는 압수수색이 무효라고 다투기는 커녕 자백한 사건이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A(36)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5월 지하철에서 앞에 선 여성 피해자의 치마 속을 휴대폰으로 4차례 몰래 촬영하고, 같은해 3~4월에도 7차례 지하철 맞은 편에 앉은 다른 피해자 4명 등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마지막 범행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1심은 전부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마지막 범행 발각 이후 도망가려 했고,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관에게도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다"면서도 "일용직으로 아내와 네 자녀를 부양하고 있어 구금시 가족들의 생계에 큰 곤란을 초래할 것 같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만 항소한 2심에서 재판부는 1심 형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A씨의 현행범 체포 이전 7차례 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A씨는 체포 과정에서 경찰에 휴대폰을 임의제출했는데,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한 휴대폰에서 추출한 촬영사진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기존 판례와 충돌하는 판단이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현행범 체포 때 임의 제출된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고 사후 영장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일반적인 현행범 체포현장에서 자신의 죄책을 증명하는 물건을 스스로 제출할 의사가 피의자에게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민 관념에 어긋나 사법 신뢰를 잃기 쉽다"며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더라도, '영장 없이는 압수할 수 없다'는 해석이 오히려 원칙에 충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압수 필요성이 있는 물건은 긴급압수한 다음 사후영장을 발부받으면 되므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대법원은 2심이 판단을 그르쳤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1심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양형사유만을 주장해 휴대폰 제출의 임의성 여부에 대해 다툰 적이 없고, 검찰만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며 "2심은 휴대폰 제출의 임의성 여부에 대해 심리하지 않은 채 변론을 종결한 뒤 직권으로 임의성을 부정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심은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던 휴대폰 제출의 임의성 여부를 직권 판단하기 전에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하거나, 임의성에 대해 증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검사에게 증명을 촉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더 심리해 본 뒤 판단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현행범 체포현장에서의 임의제출물 압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기존 판례도 그대로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