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서 사용된 비닐장갑…5800만장 추정
정부 "감염병 확산 차단 우선"…시민단체 "환경오염"
지자체별 전량 소각이 원칙…매립 시 소독 후 처리 방침

"비닐장갑은 여기에 버리면 되나요?"

지난 1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숭인동 투표소. 기표를 마친 한 40대 여성이 끼고 있던 일회용 비닐장갑을 벗으며 투표사무원에게 물었다. 투표소 출구에 마련된 종량제 봉투는 유권자들이 쓰고 버린 비닐장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투표사무원들이 수시로 새 종량제봉투로 교체했지만, 비닐장갑은 금세 수북이 쌓였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 투표소. 투표 뒤 버려진 일회용 비닐장갑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 치러진 제21대 총선에 참가한 유권자 2900여만명은 대부분 투표소에 비치된 일회용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유권자들이 손등 위에 투표 도장을 찍는 ‘인증샷’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닐장갑을 벗고 손등에 도장을 찍을 경우 신체와 투표 도장의 접촉으로 비닐장갑을 사용하는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만에 하나의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비닐장갑을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비닐장갑이 한 번 쓰고 버려지면서 환경 단체를 중심으로 폐기물 논란이 제기됐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자원낭비와 쓰레기 문제에 대해 더 고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닐장갑을 사용하지 말자"는 청원도 잇따라 올라왔다.

환경단체인 자원순환연대에 따르면 유권자 4400만명을 위해 준비된 일회용 비닐장갑은 양손에 1장씩 총 8800만장. 이는 63빌딩 7개 높이(1716m)에 달한다고 한다. 제21대 총선 투표율(66.2%)을 고려하면 이번 총선에선 최대 약 5800만장의 비닐장갑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환경오염 우려는 있겠다만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비닐장갑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법적 근거도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경계’ 이상인 경우, 각 지자체에서는 자율적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한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동성고등학교에 마련된 혜화동 제3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비닐장갑을 끼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가 크게 확산하면서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는 지난 2월 23일부터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됐고, 전국 카페와 식당 실내에서도 일회용 컵 사용 등이 허가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날 사용한 비닐장갑은 전량 소각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비닐장갑을 사용한 이유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며 "이에 따라 유권자들이 사용한 비닐장갑은 모두 소각 처리하라는 공문을 지자체에 내려보냈다"고 했다.

특히 지난 15일 오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투표한 자가격리자 1만3000여명이 사용한 비닐장갑은 종량제 봉투로 두 번 밀봉한 뒤 소각할 계획이다. 다만 소각 처리가 어려운 지자체는 비닐장갑을 한 차례 소독한 후에 매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