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일본도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사 비야디(BYD)로 앞다퉈 달려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줄일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서다. 전기차와 리튬 배터리를 만들던 비야디는 코로나 전염병 사태가 터지자 돌연 세계 최대 마스크 제조사로 변신했다. 지난해 12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비야디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미국은 이제 마스크를 수출해 달라고 손 벌린 처지가 됐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는 8일 비야디 미국 지사인 'BYD 아메리카'와 한 달에 N95(지름 0.3㎛ 미세 입자를 95% 이상 걸러주는 제품)급 마스크 1억5000만 개, 외과 수술용 마스크 5000만 개를 구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달한다.
마스크는 비야디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될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주와 비야디 간 계약은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이달 3일 중국 기업이 만든 의료용품 수입을 긴급 승인하기로 결정한 지 며칠 만에 이뤄졌다. FDA가 다소 품질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 중국산 의료용품 수입을 허용한 것은 그만큼 미국 내 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FDA 긴급 승인 절차에 따라 중국산 마스크 수입이 허용된 첫 회사가 비야디다. FDA는 미국 N95 마스크의 중국 버전인 KN95 마스크도 수입할 수 있도록 품질 기준을 완화했다. 마스크의 비야디 마스크 수입을 주도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는 비야디가 캘리포니아주 랭카스터에 전기차 제조 시설을 갖추고 수백 명의 미국인을 고용하고 있어 믿을 만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 정치권에선 캘리포니아주의 비야디 마스크 수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엔 나랏돈으로 중국 기업이 만든 버스 구매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에서 전기버스를 만들어 파는 비야디를 겨냥한 조항이다. 전기버스와 마스크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왜 굳이 미국 정부가 블랙리스트로 지정한 중국 회사의 마스크를 사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비야디가 중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사실상의 중국 정부 소유 기업이라고 문제 삼는다.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에 본사를 둔 비야디는 중국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절정에 달했던 2월 8일부터 마스크 대량 생산에 돌입했다. 전자부품 제조 자회사 공장을 마스크·의료장비 제조 공장으로 바꿔 마스크를 만들었다. 이렇게 생산한 마스크를 중국 정부 지침에 따라 병원과 일선 의료 현장에 공급했다. 지난달 중순 이 공장에선 하루에 마스크 500만 개, 소독제 30만 개가 생산됐다.
중국 전염병 상황이 다소 진정되자 지난달 16일부터는 선전 약국과 마트를 통해 일반인에게 일회용 마스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개당 2.5위안(약 425원)의 비교적 싼 가격에 마스크를 판매했다.
현재 비야디의 일일 마스크 생산능력은 1500만 장에 달한다. 생산라인을 추가하면서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생산능력을 세 배로 늘렸다. 비야디는 "고품질 마스크를 생산하려면 1300개 부품이 필요한데, 우리는 부품 90%를 자체 제작하는 기술과 능력을 갖췄다"고 했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도 비야디에 도움을 요청했다. 일본 아베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보다 못해 비야디에서 월 3억 개의 마스크를 직접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달 1일에야 현 상황을 국난이라 표현하며 모든 가구에 빨아쓸 수 있는 면마스크 2장을 배포한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최근 비야디에서 한 달에 N95 마스크 1억 개, 외과 수술용 마스크 2억 개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5월부터 의료진에게 비야디 마스크가 우선 공급된다. 비야디는 일본 수출을 위해 마스크 생산라인을 확충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그동안 아베 정부의 전염병 대응 조치가 느리고 미흡하다고 비판해 왔다. 2017년 2월 9일 이후 중단했던 소셜미디어 트위터 활동까지 재개했다. 그는 지난달 10일 트위터에 3년여 만에 처음 글을 올리며 "오랜만의 트윗입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비야디의 마스크 수출은 중국 정부 입장에선 뭉개진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라는 평이 나온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외국에 수출한 마스크는 잇따라 불량품 파문을 일으켰다. 네덜란드, 스페인 등은 중국에서 수입한 마스크가 품질 기준에 미달한다며 마스크를 중국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10일 마스크를 포함한 의료물품 수출 기준을 더 강화했다. 의료용품 수출을 허가제로 바꾸고 수출업체가 공장에서 마스크를 내보내기 전 세관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