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악재에 민감… 美 연준 유동성 공급 호재는 '반짝 효과'
中 1분기 GDP·美 소비 이번주 발표…경제지표發 2차 충격 우려
2차 감염 우려도 잔존… 외인 투자자 배당도 환율 1200원 지지요인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째 1200원을 넘어 움직이는 가운데 미국 달러가 여전한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강도높은 유동성 공급안에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는 듯 했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주 중국의 1분기 성장률, 미국의 소비지표 발표가 예정돼 있어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은 경제지표발(發) 충격을 우려하고 있는데, 당장 이달초 우리나라의 수출 지표에서도 코로나19 여파가 여실히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싱가포르와 같은 2차 파동 가능성도 제기된다.

AP연합뉴스

1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9.1원 하락한 1217.9원(종가)을 기록했다. 환율이 1200원을 넘어 움직인 건 지난달 12일(1206.5원) 이후 한 달 째다. 지난주 마지막 장이 열린 10일(1208.8원) 1200원대까지 내려와 달러 약세에 대한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환율은 다시 오름세를 나타냈다.

미 연준이 일부 투기등급 회사채까지 매입하는 2조3000억원달러 규모의 유동성 공급대책을 9일(현지시간) 발표했지만 외환시장에서는 반짝효과에 그쳤다. 6개 주요통화에 대한 달러화지수가 3일 100.58에서 10일 99.48까지 떨어졌지만 달러가 부활절 연휴를 마치자 마자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OPEC+(OPEC과 러시아 등 10개 산유국 협의체)가 긴급 회의에서 다음달부터 두 달간 하루 970만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했지만 감산규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지난주 연준의 유동성 공급책과 삼성전자의 어닝 서프라이즈 등 호재들이 모두 단기적인 이슈로 묻히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달러 매수심리가 상당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아직 원·달러 환율이 진정세를 찾기에는 이르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으로 발표되는 각종 경제지표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을 확인하면 시장의 불안심리가 증폭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주만 해도 14일 중국의 3월 수출입지표, 15일 미국의 3월 산업생산·소매판매, 17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발표가 예정돼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이달 1~10일 우리나라의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18.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코로나19의 여파가 지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서울 명동 거리 모습.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가게들이 휴업에 들어갔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험선호심리가 일부 나타났지만 글로벌 경제지표 발표를 앞두고 경계감이 조성되고 있다"며 "정책만 믿고 가기에는 위험하다는 시각이 관측된다"고 했다.

방역 선진국을 중심으로 '2차 파동'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하는 원인이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의 확산속도가 주춤해지자 지난달 23일 초·중·고교의 개학을 강행했는데 감염세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2주 만에 다시 등교를 금지했다. 두 자릿수로 줄었던 신규 확진자수는 지난 12일 233명으로 대폭 늘었다.

우리나라도 최근 확진자수가 30명 내외로 줄었지만 방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과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확산됐던 전염병이 대부분 2차 확산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장기화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은은 1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아시아 독감(1957년), 홍콩 독감(1968년) 등이 산발적·국지적으로 1~2년간 지속됐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코로나19가 2차 확산될 경우 연내 주요국의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달 외국인 배당이 집중됐다는 점도 원화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통상 4월에 집중된 외국인 배당으로 인한 역송금 수요는 여타 이슈에 묻혀 외환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지금과 같이 경기 침체기에는 다르다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에도 미·중 무역분쟁 격화, 1분기 역성장 등이 겹치면서 외국인 배당이 원화 약세를 유도했다고 보고 있다. 당장 오는 17일 삼성전자(005930)1조2000억원, SK하이닉스(000660)3677억원 등을 포함해 총 3조원이 넘는 외국인 배당 지급이 예정돼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주요국들이 경제적 여파를 고려해 봉쇄 조치를 풀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2차 감염으로 인한 경제충격도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배당금 지급도 환율의 하단을 지지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