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후 23년만에 비은행 직접대출 시행될 듯
연준식 SPV 통한 회사채 매입, 정부로 공 넘어가

한국은행이 이르면 이번주 중 임시금통위를 열어 증권사를 비롯한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담보대출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일 이주열 총재가 비은행에 대한 대출안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한은은 정부와 협의해왔다.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의결하면 한은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두 번째로 비은행금융기관에 직접대출을 시행하게 된다.

시장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회사채 매입안은 공이 한은에서 정부로 넘어갔다. 한은이 법적으로 회사채 직매입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한편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한 우회적인 매입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다. SPV를 통해 회사채, 기업어음(CP)을 매입하는 건 정부의 보증이 필요한 방식이어서 정부 차원의 검토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모습.

◇한은법 80조 '긴급대출', 외환위기 후 23년 만에 발동 예정

한은 금통위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담보대출은 한은법 80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영리기업에 여신할 수 있다'는 이 조항은 한은법 79조에서 민간과의 거래를 제한을 둔 것에 예외를 둔 것이다. 이번에는 증권사가 가진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한은이 돈을 빌려주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은은 지난 2일 이주열 총재가 비은행에 대한 대출을 언급한 후 내부적으로 검토해왔다. 긴급여신을 의결할 때는 정부 의견(한은법 65조 4항)을 들어야 하는 만큼 정부와의 실무논의도 진행했다. '정부 의견'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지만 정부와의 협의로 한은은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한은법의 소관 부처는 기획재정부와 비은행금융기관 대출과 연관된 금융위원회가 협의 대상이다.

비은행 대출은 금통위 의결 사항인 만큼 한은은 이번주 중 임시금통위를 개최해 이를 의결할 가능성이 크다. 금통위원 7인 중 고승범, 신인석, 이일형, 조동철 위원 등 4인이 오는 20일 임기 만료를 앞둔 만큼 논의 중이었던 사항을 이번주 내로 마무리 지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은행 이외 금융기관에 직접 대출을 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가 유일했다. 한은은 한국증권금융과 신용관리기금에 각각 2조원, 1조원 지원하는 방식으로 증권사, 종합금융사에 자금을 풀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업무를 하고 있다.

◇이주열 "연준식 SPV 매입 긍정적"… 정부로 공 넘어가

한은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은은 '연준식 회사채 매입안'을 새 카드로 제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특수목적법인(SPV)을 세우고 재무부의 신용보증 아래 회사채를 매입하고 있다. 자본금은 재무부가 대고,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대출을 하는 방식이다. 연준은 지난 9일(현지시간) 투기등급(BB-/Ba3) 수준의 회사채까지 매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은은 지금까지 한은법상 회사채 직매입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은법 80조가 영리기업에 대한 여신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중앙은행의 설립 취지를 고려했을 때 법상 '여신'은 대출에 한정된다고 해석했다. 회사채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자 이주열 한은 총재는 9일 기자설명회에서 "연준과 같이 정부의 신용보강을 통해 시장안정에 대처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연준식 회사채 매입안에 운을 띄웠다.

한은이 정부의 보증을 전제로 SPV에 유동성을 공급, 회사채 매입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이제 회사채 매입안은 정부로 공이 넘어가게 됐다. 아직 논의 초기 단계인 만큼 정부에서 규모와 범위, 방식 등을 확정짓는 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 금융기관 고위관계자는 "신용보강과 관련된 부분은 금융위가 제도의 구조를 짜고, 전반적인 부분은 기재부와의 협의가 필요한 내용"이라며 "빠른 시일안에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워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