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을 앞두고 '학교 설립'이라는 단골 공약이 여러 지역에서 나오고 있지만, 과거 공약의 실행 현황을 보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를 지을 땅이 있어도 설립인가를 받지 못해 결국 계획을 바꾸거나, 수년째 큰 진전없이 공회전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학교 유치 추진 계획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도 수도권 각 지역에서는 '학교 유치'가 주요 공약으로 떠올랐다. 학교시설 유치는 지역 주민들의 교육 환경 문제는 물론 집값과도 직결된 사안이라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동작 을(乙)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 등이 모두 "흑석동에 고등학교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는 중대부고가 1997년 중대부여고와 통합되면서 강남구 도곡동으로 옮긴 이후 고등학교가 없다. 흑석4·9재정비구역 내 흑석동 고등학교 부지는 1만 4047.5㎡, 24학급 규모로 준비돼있으나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나경원 후보 측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신고를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나 의원 측은 "2014년 보궐선거 당선 이후, 학부모 서명운동에 동참한 것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교육감과 논의를 진행해 2018년 12월 대신고 타당성조사 용역비가 서울시 예산(2억원)에 편성됐다"면서 "최근 교육감으로부터 대신고 이전 승인을 약속받았고, 서울시장도 2019년 12월 대신고 부지 매입 의사를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대문구 갑(甲)에 출마한 이성헌 미래통합당 후보는 천연동에 있는 군부대를 이전해 해당 부지에 명문고등학교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인천 서구 을(乙)에 출마한 박종진 미래통합당 후보도 청라예술고 설립과 오류·왕길동 중학교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하지만 주민들이 원하고, 학교를 지을 부지가 있어도 학교 신설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 서울 지역 내 뉴타운·재개발 등 정비사업 지역에서도 수년째 추진돼온 초·중·고교 건립 계획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의 경우 사실상 학교 유치 계획이 무산됐다. 앞서 2014과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유덕열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현 동대문구청장)를 비롯한 출마자들은 이 곳에 학교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10여년을 끌어온 학교 건립 대신 서울시는 이 곳에 자료실, 공연장, 전시장을 갖춘 '서울대표도서관' 건립하는 계획을 새롭게 추진 중이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매입한 땅이기 떄문에 계획 변경 결정도 서울시에서 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내년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서울대표도서관을 2023년 2월 착공 목표다. 사업 예산은 약 2252억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역 내 학생 수요가 부족하다는 서울교육청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공공부지가 장기미집행되고 있는 문제 등을 고려해 여러 후보지 중 이곳에 서울대표도서관을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의 경우 학교시설 설립이 수년째 뜨거운 감자였는데, 12년째 끌어오다 선거를 앞두고 겨우 윤곽이 나오긴 했다.
지난달 말 서울시교육청은 성북구청과 길음뉴타운 지역 내 공공공지에 초등학교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2008년부터 이 지역에 초교 설립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왔으나 서울시교육청과 성북구청이 협의 과정에서 부지 매입 방식을 두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해왔다. 그러다 성북구청이 공공공지를 학교용지로 무상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로 하면서 MOU를 맺게 된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학교 설립까지 보통 10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본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의뢰한 뒤 학교 신설이 적합하다는 심사 결과를 받아야 본격 추진할 수 있는 등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를 고려했을 때 학교를 신설이 어렵다고 교육당국의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
흑석동에 거주하는 안 모씨(34)는 "학교가 유치되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공약이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학부모 표심을 잡기 위해 나온 공약으로 보인다"면서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신뢰가 안 간다"고 꼬집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사교육과 공교육 시스템이 집값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민감한 문제"라면서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 신설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학교 신설을 약속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장기 미집행 학교 용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