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유동성 사수 의지 드러내… 국채시장 불안 대응 국고채 1.5조 매입
증권사 신용강등 임박…"비은행에 회사채 담보대출, 정부와 실무 논의"
금리인하는 코로나 대응 마지막 카드로… 5월 인하 가능성도 열려있어

4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정책 결정은 ‘유동성 공급’에 방점이 찍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공개시장운영 단순매입 대상을 확대하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아직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담보대출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 역시 시장의 유동성 경색 만큼은 사수하겠다는 신호를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채시장의 불안감과 증권사의 신용경색 등을 의식한 조치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직접 올해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을 언급했음에도 기준금리는 동결했다. 지난달 0.50%포인트(P)의 ‘빅컷(큰 폭의 금리인하)’ 이후 금리조절에는 신중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한은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마련한 재정·통화정책의 효과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금리정책의 효력과 실효하한에 대한 고민이 불가피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한 시민이 9일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기자간담회를 지켜보고 있다.

◇국채시장 불안에 증권사 신용강등 위기까지 … 유동성 공급 ‘시급’

9일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75%로 동결한 대신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 방안을 의결했다. 국채·정부 보증채로 한정돼 있는 단순매입 대상 채권에 산업금융채권, 중소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포함하기로 했다. 공개시장운영 방식 중 하나인 단순매매는 유동성을 영구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돼 왔는데, 한은은 2008년 금융위기 후 처음으로 이같은 조치를 결정했다. 아울러 한은은 현행 환매조건부(RP) 매매 대상증권과 대출 적격담보증권에 예금보험공사 발행채권도 포함하기로 했다.

한은은 이날 오후1조5000억원 규모의 국고채 매입 공고를 냈다. 앞서 이 총재가 금통위 회의 후 설명회를 통해 전달한 사항으로, 국고채 수급 안정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최근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으로 향후 국채발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고채 시장에서는 불안감이 조성됐다. 한은이 지난달 16일 0.50%P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지난 7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와 기준금리 사이 스프레드(격차)는 29.7bp(1bp=0.01%포인트), 국고채 10년물 금리와 기준금리 스프레드는 83.0bp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기준금리 대비 국고채 3년물, 국고채 10년물 금리 스프레드 전고점이 각각 31.4bp, 59.2bp(2019년 11월 12일)였던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격차가 벌어져 있는 셈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를 내리긴 했는데 시장금리를 대표하는 국고채 금리는 추경 이슈가 불거지면서 물량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컸던 상황"이라며 "자금 흐름이 다 맞물려 있어서 국채시장 안정화되지 않으면 채권시장이 전반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어 한은이 이같이 결정한 것 같다"고 했다.

한은은 최근 신용경색 우려가 불거지고 있는 증권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증권사를 포함한 비은행금융기관에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직접 대출을 해주는 방안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증권사는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그간 대거 판매했던 주가연계증권(ELS)발 증거금 납부(마진콜)가 쇄도해 자금 돌려막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여기에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 자산까지 부실 조짐이 나타나자 국제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강등될 상황에 처했다. 무디스는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6대 증권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하향조정 검토’로 바꿨다.

현재 한은은 한은법 80조를 근거로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은은 한은법 79조에 따라 민간과의 거래가 제한돼 있지만 한은법 80조는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영리기업에 여신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두고 있다. 다만 긴급여신을 의결할 때는 정부 의견(한은법 65조 4항)을 들어야 해 한은과 정부는 실무차원의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 의견'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부실 가능성을 감안한 신용보증으로 폭넓게 해석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더라도 기업 곳곳에 흘러들어가지 못해 신용 경색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이럴 때는 금리를 내리는 것보다 유동성 공급이 효과적이어서 한은이 돈이 흘러 들어가도록 경로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주열(가운데) 한은 총재가 9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금통위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주열 "금리여력 있다"… 마지막 카드로 놔둔 ‘금리인하’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향후 금리인하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 총재는 이날 5월 금통위에서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묻자 "인하여력이 남았으니, 항상 상황에 맞춰 정책대응을 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돼 실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극심해지면 얼마 남지 않은 금리여력을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기준금리(0.75%)가 실효하한에 근접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실효하한은 가변적"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미 연준이 ‘제로금리’를 시행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금리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여력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력이 있다’는 건 언제든 정책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발언"이라면서 "만약 선진국 금리 등이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의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금리인하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의 여력에 대해 언급한 건 일단은 유동성이 제일 급하지만 나중에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장기적으로 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은이 이날 향후 경제전망에 대해 눈높이를 대폭 낮춘 것 역시 향후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 총재는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1%대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며 "하반기엔 경제활동이 점차 개선된다는 전제로 플러스 성장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한은은 내달 28일 경제전망을 발표할 예정으로, 지난 2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을 기존 2.3%에서 2.1%로 낮춘 바 있다.

시장에서도 연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하고 있다. 향후 코로나19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된 실물경제 지표로 드러나면서, 한은이 추가적인 금리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정부가 코로나 대비를 위한 추경 편성에 나서면서 채권금리 상승이 예상된다는 점도 연내 추가인하를 예상하는 근거로 지목됐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 국채 금리 상승(가격 하락)을 제한할 필요가 있어서다.

실제 이날 금통위에서는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금통위원 2인의 소수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조동철, 신인석 위원이 0.25%P 인하 소수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