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서 인간에 전염될 수 있는 미지의 바이러스 수십만개"
영국 왕립학회보 "멸종위기종과 인간 접촉 바이러스 노출위험 커져"
세계 각국서 "중국 야생동물 거래 중지 위한 국제협력 필요"

해외 바이러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1세기형 바이러스의 선봉대격으로 이후에 들이닥칠 수천, 수만개의 '바이러스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자연 생태계에 대한 무절제한 개발, 인구수 증가로 인해 야생동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그동안 동물에게만 존재했던 바이러스들이 인간에게 옮겨질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물권단체 케어 회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야생동물 및 소동물에 대한 도살 금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참석자들은 동물 사육, 이용, 도살이 신종바이러스를 발발시킨다며 한국과 중국 정부에 강한 법규 마련을 촉구했다.

수의역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중 한 명인 더크 파이퍼(Dirk U. Pfeiffer) 홍콩시립대 수의과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6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인류는 이미 (무분별적인 생태계 개발로 인해) 불균형을 초래해왔다"며 "인류가 숲을 개발하고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에 접근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병원균과 조우하게 되는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지구화 현상에 따라 전 세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염병의 급격한 세계 확산으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가능성 역시 높아진 셈이다.

중국 질병관리본부(CDC)의 조지 가오(George Gao) 국장과 미국 국제개발처의 데닉스 캐럴 박사연구팀이 수학적 예측 모델을 통해 분석한 결과, 박쥐와 돼지 등을 포함한 각종 야생동물들의 체내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이 무려 17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예측 모델로 이같은 바이러스가 인체에 전염될 수 있는 숫자는 전체의 절반 수준인 80~90만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류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보존의학 컨소시엄의 피터 다스작 의장이 이같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기후변화에 비유한 건 원인을 인류가 제공했다는 점에서 통하기 때문이다. 다스작 의장은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신종 팬데믹 역시 실재하는 위협이며 우리 스스로 초래한 일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지구가 6차 대멸종기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자원 착취 속에서 인간과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어남에 따라 '괴질'이 인간사회에 창궐할 보건 위험이 커졌다는 진단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날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 미국 연구진은 코로나19 팬데믹도 이러한 현상의 일부라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영국 생물학 학술지 왕립학회보B에 실었다.

연구진은 짐승들이 인간에게 옮긴 것으로 알려진 바이러스 142종을 골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 보고서인 '적색목록'과 비교해 어떤 동물이 인간과 얼마만큼 바이러스를 공유하는지 집계했다. 소, 양, 개, 염소 등 가축들이 가장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를 인간과 공유했고 그 수치는 야생 포유류의 8배에 달했다.

설치류, 박쥐류, 영장류 등 주택, 농장 근처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도 조사대상 가운데 75% 연구진은 인간에게 새로 전이되는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은 수렵, 야생동물 거래, 서식지 파괴 때문에 개체수가 감소한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에서 가장 크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생물다양성이 높은 오지에 인간이 침입해 인간이나 주변 동물과 야생동물의 새로운 접촉이 이뤄지면서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이 인간에게 전이될 위험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논문의 주저자인 원헬스 연구소의 크리스틴 크뤼더 존슨은 "바이러스가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전이되는 것은 야생동물, 그들의 서식처와 관련한 인간활동의 직접적 결과"라며 "그런 활동 때문에 인간이 야생동물들과 바이러스를 공유하는 대가를 치른다"고 했다.

중국이 각종 바이러스들의 대표적인 발원지로 꼽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SCMP는 중국 공학 아카데미의 2017년 보고서를 인용, 야생동물 시장이 520억 위안(약 9조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또 야생동물 시장에 종사하는 인력만 1400만명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야생동물을 판매하는 중국 우한 수산물 시장이 코로나19 진원지로 지목돼 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천산갑(중간숙주)을 거쳐 인간에게 전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콩 복지법 전문 교수인 아만다 휘트포트는 "바이러스 등 감염병의 위험을 최소화기 하기 위해 모든 야생동물의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생동물 거래 금지법은 얼마나 엄격하게 시행되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옌중 황 뉴욕 외교위원회 세계보건담당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야생동물 거래 금지법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국제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레미 로스만 영국 켄트대학 바이러스학 교수는 "개구리와 거북이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야생동물이 어떻게 잡히고, 어떻게 판매ㆍ소비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야생동물 거래는 바이러스 등 병원체가 종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와일드에이드와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후 3년이 지난 2006년 중국 내 16개 도시에서 2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인의 30%가 야생동물을 먹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계 야생동물단체 200여곳은 7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서한을 보내 살아있는 야생동물을 사고파는 시장, 야생동물을 전통 약재로 쓰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각국에 권고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