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구심력 '아베노믹스', 긴급사태 선언으로 파탄 우려
아베, '최대 경제대책-긴급사태 선언' 한번에 발표해 충격 완화 노려
외신 "일본 대응 너무 늦었다…감염 확산세 제어 불가"

"경제가 말도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덜컹덜컹 거릴 것이다. "

긴급사태 선언을 빨리 해야 한다는 한 각료의 지난 3일 발언에 대한 일본 정권 2인자 아소 다로 재무상의 답변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긴급사태 선언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불과 3일 만에 태세를 전환했다. 역대 최대규모의 경제대책을 마련하고 경제에 주는 충격을 줄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6일 정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본부를 주재하는 아베 신조 총리.

7일 아베 신조 총리는 정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본부를 열고 도쿄와 인근 3현인 가나가와, 사이타마, 지바, 그리고 오사카, 효고, 후쿠오카 7개 지역을 대상으로 긴급사태를 선언할 예정이다. 기간은 약 1개월로 긴급사태가 선언되는 지역은 지자체장이 주민들에게 외출 자제, 재택 근무 등을 요청할 수 있다.

지난달부터 도쿄, 오사카를 중심으로 감염자 수가 급증하면서 지자체장과 의료계에서 긴급사태 선언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졌지만 아베 정권은 소극적이었다. 아소 다로 재무상을 비롯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지난주까지 긴급사태 선언을 할 시점은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마이니치는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 선언에 신중했던 건 그동안 정권의 구심력을 유지해온 아베노믹스가 사실상 파탄 상태에 몰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2월에 자체적으로 긴급사태 선언을 한 홋카이도의 사례를 특히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홋카이도는 2월에 감염자 수가 급증하며 법적인 권한은 없지만 도지사가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이에 관광, 요식업을 중심으로 매출이 급감해 도산하는 업체도 나타났다. 지난 3월 31일 아베 총리는 수상 관저를 찾아 경제대책을 조언한 야당에게 "홋카이도는 (긴급사태)선언을 하자 단번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는 코로나 이전에도 경기 후퇴 국면이었다. 작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5분기 만에 감소했다. 작년 10월 소비세율을 인상하며 소비가 위축된 영향이 컸다. 여기에 도쿄올림픽 1년 연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하자 정부 내에선 긴급사태 선언이 경제 위축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2일까지 "집단감염도 원인을 상당부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멀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정부 내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건 4일이었다. 도쿄에서 일일 감염자 수가 처음으로 100명을 돌파하며 의료 붕괴가 조만간 현실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의료 현장에서 감염자가 급증해 의료기구와 종사자가 부족해 중증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 측근들은 "긴급사태를 선언하면 되는 일이 아니고, 제대로 된 경제대책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경제대책과 긴급사태 선언을 한번에 발표하는 게 경제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베 총리도 전날 긴급사태 선언을 발표하기 전에 '사상 최대 규모인 108조엔의 긴급 경제대책'을 먼저 언급했다.

긴급사태 선언을 결정하고도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외국의 봉쇄령과는 다르다는 설명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날 "이른바 록다운(도시 봉쇄)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일본 정부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BBC는 전문가를 인용해 "긴급사태 선언이 너무 늦었다"며 "도쿄에서의 감염 확대는 이미 쉽게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아베 총리가 초기 에 강도 높은 대책을 실시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일본 의사회와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로부터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일본은 대규모 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집단감염을 감시해 제어하는 방식으로 감염자 수를 억눌러왔지만 감염원 불명 사례가 늘고 있어 이 전략은 더이상 쓸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기준 일본 내 감염자 수는 4804명으로 늘었다. 이중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자가 712명, 우한 전세기 귀국자가 14명이고 나머지 4092명은 일본 본토에서 감염이 확인된 사람들이다. 지역별로 보면 도쿄가 1116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오사카 428명, 지바 278명, 가나가와 271명, 아이치 239명, 효고 209명 순으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