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항공산업에 1조~2조원 수준의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고사 위기에 놓인 항공사들에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것이다. 정부는 대형 항공사의 경우 시장에서 자금을 우선 조달하고 부족한 부분을 정책금융기관이 보충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7일 "항공업계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저비용항공사(LCC)는 물론 대형 항공사에도 지원이 필요하다도 판단하고 있다"며 "대형 항공사의 경우 우선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기존 금융사 여신 한도를 최대한 이용하고 부족한 자금은 정책금융기관이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항공산업 자금 지원 규모는 1조~2조원 사이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항공업계의 자금 여력과 자체 자본 조달 가능 금액 등을 고려한 액수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대한항공 여객기

항공협회가 국적 항공사의 국제선 운송 실적을 기준으로 피해 규모를 산출한 결과 올해 상반기 국적 항공사의 매출 피해는 최소 6조4451억원으로 예상된다. 항공업계는 이를 기준으로 정부에 무담보 저리 대출 확대와 채권의 정부 지급보증 등 대규모 정책자금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항공업계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등 대형 항공사의 경우 당장 기업이 부실화될 수준의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6000억원 규모의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지난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영구채 인수와 한도 대출 등으로 1조6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한도대출의 잔액(8000억원)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방식의 자금 조달을 우선 진행하고 자구 노력도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언론과 민간 자문위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항공산업은 금융지원과 함께 자본확충, 경영개선 등 종합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관계부처, 정책금융기관 등과 함께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다각적·종합적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대형 항공사에 시장 자금 조달과 자구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대기업 특혜 시비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시장이 워낙 좋지 않으니 대형 항공사에 대한 자금 지원이 필요하지만, 항공산업이 정상화된 이후에는 특혜시비, 직권남용 등의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매출 타격이 계속되면 고정비 비중이 높은 항공사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전망이다. 항공산업의 경우 영업비용 가운데 고정비 비중이 35∼40% 수준으로 상당히 높기 때문에 대규모 매출 타격에도 탄력적인 비용 감축이 쉽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글로벌 자금 시장이 경색돼 우량 기업의 회사채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형 항공사도 재무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시장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도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항공업계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금융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태가 지난해 매각이 진행되던 당시와 비교해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라 HDC현산의 인수 부담이 커졌다. 당초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에 1조4700억원을 유상증자하면, 아시아나항공으로 하여금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대상 차입금 상환에 1조1700억원을 쓰도록 할 예정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1386.7%다. 당초 HDC현산이 당초 계획대로 자본을 확충하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300%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당초 기대치의 두배 수준인 600%를 맞추는 것도 어려울 전망이다. 매각 지연으로 이달 7일로 예정됐던 유상증자 시기도 연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지난해 매각이 진행될 때와 현재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며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국책은행의 지원 방안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