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신용등급 '디폴트' 갈수도…재정여력 부실에 코로나까지
신흥국 '돈풀기'에 "득보다 실 클 것" 진단…외환위기 우려나와
관광대국 스페인·이탈리아 코로나 직격탄…GDP 대폭 감소 전망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에 일제히 돈풀기에 나선 가운데 남미·아프리카의 일부 국가가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흡한 방역 체계·사회안전망을 보완하고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이들 국가의 신용등급을 내리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은 디폴트 직전으로 떨어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정크본드 수준으로 하향조정됐다. 빈곤문제에 빠진 브라질은 긴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국제기구에 손을 벌리고 양적완화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이들 국가가 통화가치 하락으로 외환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지난 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은행 밖에서 노인이 마스크를 쓴 채 줄을 서고 있다.

◇신흥국 신용등급 줄줄이 하향… IMF "중남미 14곳 구제금융 신청"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일부 신흥국 국가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무디스(Moody's)는 지난 3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Caa2에서 Ca로 두 단계 강등했다. Ca는 총 21단계인 무디스의 장기채권 등급 중 20번째로, 디폴트 단계인 최하 C보다 한 계단 높다.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바꿨는데, 이는 조만간 디폴트 등급으로 강등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아르헨티나의 해외채무 규모는 총 1150억달러(141조9000억원)인데, 최근에는 이를 다시 조정하기 위해 채권단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과 57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에 합의, 현재 440억달러를 빌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해 채무조정 기한을 넘긴 상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채무 탕감을 요청했지만 IMF 측은 일단 거부의사를 밝혔다.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8번의 디폴트를 선언한 바 있어 채무조정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9번째로 디폴트를 맞게 된다.

IMF는 5일(현지시간) 중남미 국가들이 50년 내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나타낼 것이라고 밝혔다. 중남미 14개국이 IMF에 44억8000만달러 규모의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황이다. 이미 재정여력이 말라버린 이들 국가는 최근 유가하락과 자본유출로 극심한 타격을 받은 상황이다.

무디스는 지난달 남아공의 신용등급을 Baa3에서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채권) 수준인 Ba1로 하향 조정했다. 이어 피치(Fitch)도 이달 남아공의 장기 외화표시 발행자등급(IDR)을 'BB+'에서 'BB'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 전망은 '부정적'을 제시했다. 해외 주요 기관들이 더이상 남아공에 투자를 하기 어렵게 됐다. 남아공 랜드화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절하된 상황이다.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경제상황이 취약한 상황에서 방역부실과 자본이탈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지난달 말 코로나19로 가장 위험한 신흥국으로 잠비아, 앙골라, 나이지리아, 가나 등 아프리카 국가를 지목하면서, 신흥국들의 연쇄 국채 디폴트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커졌다고 진단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내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노숙인들이 자선단체가 나눠주는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일단 돈푸는 신흥국 중앙은행… 외환위기 그림자 드리우나

브라질과 폴란드 등 일부 신흥국 중앙은행은 코로나19의 경제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양적완화에 나섰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달 1조2000억헤알(약 290조원) 규모의 재정·통화정책을 발표했다. 신흥국에서는 전례없는 규모의 부양책이다. 이외에 폴란드, 남아공 중앙은행은 무제한 국채매입 카드를 꺼냈다.

문제는 신흥국의 경우 이같은 선진국식 양적완화 방안이 득보다 실이 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비기축통화국의 양적완화는 통화가치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다 사회안전망, 일자리 등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경기부양의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라모스 골드만삭스 중남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 외신에서 "실업률이 높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신흥국에선 양적완화가 제대로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브라질만 해도 빈곤·실업 문제가 기저에 깔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기초적인 방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주 정부는 세계은행(WB)에 병상과 진단키트 등을 확보하기 위해 1억달러 수준의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디폴트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며 "IMF를 비롯한 국제기관에서 글로벌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최대한 지원을 하겠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악재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가파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를 둘러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관광산업 수익이 큰 비중을 차지한 만큼 국경봉쇄, 이동제한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인연합회인 콘핀두스트리아(Confindustria) 소속 연구기관은 올해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이 6%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스페인 GDP가 올해 9.7%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