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셰일 산업 구하기 나선 트럼프
유가 회복은 쉽지 않을 것…코로나 최대 변수
휴전 나선 사우디, 심경 바뀐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간 유가 전쟁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면서 석유 생산량 감축 소식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우디는 러시아를 포함한 확대된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 긴급 회의를 소집하며 ‘가격 전쟁’을 종식시킬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감산 논의가 정말 이뤄질 수 있을지, 향후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지 분석이 오가고 있다. 무엇보다 셰일 산업이 위기에 처한 미국의 ‘포지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이의 세계 에너지 시장 균형에 대한 불화로 양국의 유가 전쟁이 일어났다.

5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와 CNBC 등은 최근 폭락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전 세계가 석유 감산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고 있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 美 셰일 산업 구하기 나선 트럼프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 생산국들이 석유 생산을 크게 줄일 것(big cut)이라고 밝히면서 유가가 한때 반짝 반등하기도 했다.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하루 1000만배럴에서 1500만배럴의 석유 공급을 줄이기 위한 사우디와 러시아간 협정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소식에 한때 18년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20달러 밑까지 떨어졌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30달러에 근접할 수준으로 올랐다. 브렌트유는 지난 이틀 동안 35% 상승했다.

석유 감산과 관련해 OPEC+는 당초 6일 화상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현재 9일로 미뤄진 상태다. FT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석유 수요를 하루에 3분의 1, 3000만배럴 이상 감소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OPEC+는) 어떤 종류의 합의에도 도달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미 셰일 석유 생산자들이 특히 큰 타격을 입으면서 이를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포지션에도 촉각이 쏠리고 있다. 미국 덴버에 본부를 둔 화이팅 석유 업체는 이번주에 파산을 선언했다.

투자자들이 더 많은 채권이 파산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경쟁 생산업체들이 발행한 채권의 수익률이 오히려 급등하기도 했다. 이는 전례 없던 일로, 과거 이 같은 상황에서 경쟁 생산업체들은 조정된 삭감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곤 했다.

앞으로 미국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독점금지법은 기업들이 원하더라도 석유 생산을 줄이기 위해 함께 운영 능력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많은 이들 중 특히 엑손모빌과 같은 선두업체는 이념적, 경제적 이유로 (생산) 조정에 극구 반대하고 있다.

FT는 "따라서 세계 (석유) 공급 협정에 대한 미국의 기여로서 이러한 최종 생산량 감소를 공식화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면서 "유가가 다시 빠르게 오른다 해도 미국 석유 생산업자들은 (수익이 나려면) 배럴당 45달러 이상의 가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유가에 대한)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유와 가스 산업을 규제하는 텍사스 철도위원회(RCT)는 모하마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라이던 시튼 RCT 회장은 반세기 전만 해도 비교적 흔하게 이뤄졌던 주(州)의 비례적인 (석유) 생산 감축 조치에 대해 "우리가 테이블에 가져올 수 있는 ‘협상 카드’"라고 언급했다.

FT에 따르면 바르킨도 총장은 시튼 회장을 OPEC+ 회의에 초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금요일에 미국 석유 회사들과 따로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 유가 회복은 쉽지 않을 것…코로나 최대 변수

결과적으로 앞으로 유가가 다시 회복할 수 있을 지도 관건이다. FT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별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석유 감산 합의는 유가를 크게 올리기 보다는, 더 이상의 가격 붕괴를 피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원유 컨설팅업체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퍼 매그너스 나이스빈은 "하루 약 1000만배럴의 감축으로 석유 산업이 일단 재고가 다 떨어지면 감산이 강제적으로 중단될 수 있는 ‘준비할 여지’를 갖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는 다른 생산업자들이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이고 시장에서는 유가가 약 10달러 또는 심지어 더 낮은 가격으로 붕괴되기 보다는 배럴당 30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을 모두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석유 수요 감소의 규모는 석유 거래가 불가피한 것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결국 우한 코로나의 여파가 얼마나 갈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한 코로나로 인한 경제 폐쇄 조치가 여름까지 계속되면 어떤 삭감 조치의 영향도 빠르게 사라질 수 밖에 없다.

한 트레이더는 "어느 시점에서 하루 3000배럴의 수요를 잃으면 대략 같은 양의 생산량을 잃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휴전 나선 사우디, 심경 바뀐 러시아

사우디와 러시아의 입장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양국의 유가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여파가 향후 그들의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지 여러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초 사우디가 유가 전쟁을 시작하게 한 것은 지난달 초 더 큰 규모의 생산량 감축 제안을 철회하기로 한 러시아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난 지금 러시아는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로선 모든 석유 생산자들이 너무 낮은 유가와 어떤 단계에서는 어쨌든 석유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러시아는 모든 원유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석유 시장 안정을 위한 공동 조치를 환영한다고 밝히며 감산은 하루 배럴당 1000달러 정도로 하고 미국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미국의 셰일 산업을 압박하고 싶어하는 것은 사우디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사우디 역시 한달 전 유가를 인하하고 석유 공급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며 가격 전쟁을 선포했지만, 최근 미국의 압력과 그들의 국제적 명성이 나빠지면서 ‘휴전’할 준비에 들어갈 수도 있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중 한 곳이지만, 석유 수요 급감 자체는 그들 역시 아무리 싼 가격에라도 원유를 팔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석유 수요 붕괴 자체가 사우디와 미국이 강제로 손을 잡게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FT는 "결정적으로 사우디와 주요 서방 동맹국은 미국, 특히 트럼프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면서 "11월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가운데 사우디는 야당인 민주당의 승리가 주요 지역 라이벌인 이란과의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을 지 두려워할지도 모른다"며 이 같이 분석했다.

컨설팅업체 페트로매트릭스의 올리비에 야콥은 "어떻게 해서든 사우디의 석유 공급이 감소할 것"이라면서 "결국 사우디 역시 그들이 유가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공급을 줄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