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 우려에 면회 금지한 요양원·요양병원
"두 달째 부모 얼굴 못 봤다"…퇴원 환자도 늘어
전문가 "요양원에 믿고 맡기는 게 현재로선 최선"

"엄마,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어요? 무슨 일 있음 꼭 간병인한테 말해요…"

지난 2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요양병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모든 면회객의 방문을 금합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병원 입구에 붙어 있었다. 이 병원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지난 2월 5일부로 의료진과 간병인 외 모든 면회객의 출입을 금지했다. 직계 가족도 예외는 없다.

이정미(가명·76)씨도 벌써 두 달 째 모친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 5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98)를 찾아왔다. 병원밥이 입맛에 맞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매주 집에서 반찬거리와 국을 만들어 전달했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어렵게 됐다. "그 좁은 병실에서 얼마나 답답하실까…전화로 ‘나는 괜찮다’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긴 한숨을 내쉬는 이씨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지난달 1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한 요양병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집단 감염이 우려돼 폐쇄돼 있다.

◇기약없는 만남에 가슴 끓는 자식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모신 가족들이 얼굴을 못보는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시설에 맡긴 자녀들은 "코로나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다"며 애를 태웠다.

시아버지를 경기도 평택의 한 요양원에 모신 김수연(가명·46)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대신해 매주 병원을 찾아 시아버지를 살핀 게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요양보호사를 통해 안부를 전해 듣는 게 전부라고 한다. "시아버지께서 치매가 있어서 아들 얼굴만 알아보시는데 코로나 때문에 벌써 몇 달째 찾아뵙지 못해서 아들 얼굴마저 잊으실까 걱정이 큽니다."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가입된 전국 2000여개의 기관이 보호자 면회 제한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요양원 관계자는 "환자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는 등 긴급한 상황에만 면회를 허용하고 있고 그마저도 외부와 격리된 별도의 병실에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18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다수 나온 것으로 알려진 대구시 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입원환자들이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노인들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면회객 방문이 막힘과 동시에 입원 노인들도 외출이 아예 불가능해졌다. 이정미씨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자식들이 모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인근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했다"면서 "한 달 넘게 답답한 병실에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온다"고 말했다.

◇"차라리 집에서 모시겠다"…퇴원수속 밟기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자 가족의 소식을 직접 듣기 어려운 보호자들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령이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요양원 입소자들은 휴대폰 사용도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데 중환자실처럼 보호복이라도 구비해 면회가 가능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하는 자녀도 있다.

물론 시설에 부모를 맡긴 자녀들도 면회객 방문을 금지한 요양원·요양병원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로한 환자들이 집단으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고,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명적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보름 동안 확진자 1383명의 감염 경로를 분석한 결과, 34.9%가 병원과 요양원에서 발생했다.

지난 16일 서울시 성북구의 한 요양원에 면회 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다.

불안한 마음에 아예 퇴원 수속을 밟고 부모를 집으로 모시는 자녀들도 있다. 인천 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지난 한 달간 입원 환자 100명 중 10명이 퇴원했다. 병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요양병원을 중심으로 집단 감염 사례도 나오고, 면회객 방문도 기약 없이 금지되면서 자녀들이 모시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92세 노모를 서울 송파구의 요양원에 맡겼다는 한 보호자는 "90세 노인네가 얼마를 더 사실지도 모르는데 얼굴도 못보게 하니 이건 아니다 싶어 아예 앰뷸런스를 이용해 집으로 모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족들의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자칫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들이 오랜 기간 가족과 단절되면서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영상통화나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게 최선이고, 가족들은 요양원 종사자들에게 믿고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 연구원고령사회연구센터장은 "보호복이나 방역이 아무리 철저하게 잘 이뤄진다고 해도 격리만큼 강력한 대책은 아니다. 일말의 감염 가능성이 남을 수밖에 없다"면서 "고령의 가족을 요양원에 맡긴 보호자들의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는 만큼 요양병원 내 CC(폐쇄회로)TV라도 일시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이 최선일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