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 평일 외출'에 웃던 '軍세권'... 1년 만에 '울상'
코로나 확산방지… 국방부 외출·외박·면회 금지
상인들 "매출 반 토막, 늘렸던 알바생 잘라"
·郡, 소상공인 지원 나섰지만… "빚 내라는 얘기냐"

지난 27일 오후 6시 경기도 양주시 육군 25사단 부근 한 피자 가게. 주인 김모(44)씨가 홀로 가게를 지켰다. 지난해부터 군 장병들의 평일 외출이 가능해지면서 북적일 시간이었지만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방부가 지난달 장병들의 외출·외박·면회를 금지하면서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라고 한다. 매출도 전달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평일 외출 제도가 시행되면서 장병들이 몰릴까봐, 아르바이트생을 더 뽑았어요. 올해 초까지 5명이 일했는데 이제 2명으로 줄였어요. 그마저도 주말에만 출근해요. 죽을 맛입니다." 김씨의 말이다.

지난해 2월 평일 군부대 장병 외출을 전면 허용하면서 ‘군(軍)세권’이란 말까지 나온 군부대 주변 상권이 우한 코로나에 흔들리고 있다. 장병들이 주요 손님이었던 이들 지역의 식당과 PC방, 노래방 매출은 평소보다 50~80%가량 줄었다고 한다. 각 지자체에선 경영안정자금을 계획하는 등 상인들 살리기에 나섰지만, 지역 상인들은 우한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몰라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7일 강원도 인제군의 한 PC방이 텅 비어있다. 주 이용객이었던 군 장병들이 최근 코로나 사태로 부대 밖 외출을 못 하면서 이달 PC방의 매출은 지난달보다 80%가량 줄었다.

◇외출·외박 중단에 흔들리는 군세권… 상인들 "버틸 수밖에"
올해 초만 해도 군 접경 지역 상권은 활기를 띠었다. 지난해 2월 국방부에서 장병들에게 평일 외출을 허용한 뒤 군부대 인근 중국집, 치킨집 매출이 두 배씩 뛰었고, PC방은 늘 만석(滿席)이었다. 상인들은 쾌재를 불렀다. 군세권이란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군세권은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20일 제주 해군부대에서 복무 중인 병사(22)가 우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첫 군인 확진자였다. 30일 기준 군 내 확진자는 39명으로 늘었고, 이 중 9명은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또 1700여명이 격리된 상태다. 국방부는 지난달 22일부터 장병들의 외출·외박·면회를 전면 금지했다. 강원도 양구와 인제, 경기도 양주, 연천 등 접경 지역 상권에 직격탄이었다.

인제군의 한 PC방은 이달 매출이 지난달보다 90% 줄었다. 이 지역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옥희(62)씨는 "인터넷료 등 고정비는 매일 7만원씩 나가는데 하루 매출은 5만원도 안 된다"며 "두 명 있던 아르바이트생도 어쩔 수 없이 해고했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양정하(57)씨도 "인건비 지출을 제외해도 매달 200만~300만원 적자"라며 "아예 문을 닫아버린 PC방도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접경 지역인 강원도 양구군도 사정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양구군 번영회에 따르면 이곳 상권의 이번 달 매출액은 전년 대비 80% 이상 떨어졌다. 장병 면회객들의 발길도 끊기면서 한 달 넘도록 투숙객을 한 명도 못 받은 숙박업소도 있다고 한다. 홍성철 양구군 번영회장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장병들이 부대 밖으로 나오지를 못하니까 월세에 전기료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다"라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군부대는 '배달', 지자체 대출 한도 늘렸지만…
일부 부대는 지역 경제를 지키자며,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에 따르면 이곳에 주둔해 있는 육군 7사단과 15사단, 27사단 등은 아예 부대 인근 음식점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양주시 25사단에서도 매주 금요일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 인근 상인을 돕기에 나섰다.

소상공인들의 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임대료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에서는 이달부터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소상공인에게 임대료를 낮춰주겠다는 임대인들이 등장했다. 철원 외에도 원주, 양구 등 다른 접경 지역에서도 임대료 할인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지자체에서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조례를 개정한 사례도 있다. 양구군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분들 돕기 위해 지난달에 아예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장병 외출·외박·휴가·면회 통제가 1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지난 23일 강원 양구군 중심지인 양구읍 일대가 인적 드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접경 지역 상인들은 이런 지원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생계유지조차 어렵다고 한다. 결국 우한 코로나 사태가 해결돼 장병들이 찾아줘야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다. 양주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모(59)씨는 "지금까지 나온 정책들도 결국 빚 져서 나중에 갚으라는 얘기"라며 "현실적으로 코로나가 끝난 뒤 군인들이 부대밖으로 나와야 우리들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했다.

군은 다음달 5일까지 장병 휴가와 외출·외박·면회를 계속 통제하기로 지난 24일 결정했다. 통제 조치는 우한 코로나 사태에 따라 더 연장될 가능성이 있어 언제 다시 원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기 연천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5)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당장 적자도 문제지만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게 더 걱정스럽습니다. 당장의 상권 회복은 바라지도 않으니 언제까지 버티면 되는 건지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