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 확진자 87% 나온 대구·경북 지역 '파견 간호사' 모집
'인력난' 호소하며 모집한 지 보름 만에…지원서 3000여 통 접수
'지원 동기' 칸은 따로 없었지만, 저마다 이유 함께 적어 낸 간호사들
"이직·이민 준비 포기" "대학시절 본 '메르스 간호사'처럼 되고파"
"제가 봉사자에 선발되지 않는다면, 돕고 싶지만 도울 수 없다는 게 제겐 큰 고통이 될 것 같습니다. 부디 저를 그곳에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경력 2년 차인 오성훈(29) 간호사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근무할 '파견 간호사' 모집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지원서 작성 항목은 △임상경력 △근무 기관 △근무 가능 지역 △가능 기간 △희망 근무 형태 등 5개 정도뿐. '지원 동기'를 기입하는 칸은 없었지만, 오씨는 한쪽 여백에 '꼭 선발되고 싶다'는 진심을 담은 글을 추가로 적었다. 오씨처럼 지원서 한켠에 동기를 적어 낸 간호사들은 "간절하게 돕고 싶단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라 환자를 치료할 파견 간호사를 대대적으로 모집한 가운데, 지난 13일 기준 총 3274통의 지원서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691명이 민간 병원으로 배정받아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5대1가량의 경쟁률인 셈이다.
23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현재 대구·경북 지역 민간 병원에서 파견 근무 중인 간호사들이 지원 당시 써냈던 지원 동기들을 모아봤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원 동기가 선발에 영향을 미치는 항목은 아니다"라면서도 "많은 간호사분들이 동기가 의무가 아닌데도 짤막하게라도 파견 봉사를 가고 싶은 이유에 대해 적어 보냈다"고 했다.
◇'이직 기회' 포기하고, '메르스 간호사 동경' 대학시절 떠올려 지원한 이들까지
지원서에는 개인의 사정을 떠나 국민을 돕겠다는 간호사들의 열의로 가득 채워졌다. 안동에서 근무하는 김혜미(31) 간호사는 미국으로의 취업 이민을 절차를 밟던 중 모집 공고를 보게 됐고,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김씨는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하지만, 한국 간호계가 힘들어 곧 미국으로 떠나는 간호사"라며 "3~4월쯤 마지막 단계인 대사관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대구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곧장 지원하게 됐다"고 썼다.
준비하던 이직 과정을 포기하고 파견 의료 봉사를 자처한 간호사들도 여럿이다. 배인혜(28) 간호사는 "국민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임상을 떠나 의료 관련 공단에 입사하기 위해 취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고 했다.
배씨는 "사실 바로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4월로 예정된 채용 공고를 앞두고 있었고, 더불어 코로나에 감염됐을 경우 올해 취직 기회가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면서도 "취직보다는 국민을 위한 코로나 대응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최예은(32)·유예지(28) 간호사도 "이직을 준비하던 중이었지만 모집 소식을 듣고 도움이 되고 싶어 지원했다"고 썼다.
5년 전 메르스 간호사들의 모습을 떠올려 의료 전선에 뛰어든 간호사도 있었다. 윤소윤(27) 간호사는 "2015년 당시 저는 간호학과 학생이었다"며 "메르스 때 간호사들이 의료 지원에 나서서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본인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하는 걸 보며 나도 언젠가 간호사로서 국가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고 했다. 윤씨는 "벌써 3년 동안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간호사가 됐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간호사가 되려고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루빨리 배치돼 환자들을 돕고 싶습니다" "육아 휴직 중이지만 지원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간호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등 간호사들은 저마다의 짤막한 지원 동기들을 메일 내용에 덧붙여 보냈다.
◇매시간 체온 체크·매 끼니 식사 배달, 없어선 안 될 간호 인력…"지금도 모집 중"
이들은 현재 안동의료원, 청도 대남병원, 대구동산병원 등 대구·경북지역 내 34곳 병원에서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의료 봉사를 하는 중이다. 간호사들은 매일 환자들의 혈압·체온·맥박·호흡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처방된 약을 투여하고 매 끼니 식사를 배달하며 이들의 불만을 들어주는 일까지, 환자 한 명 한 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내 수천 명의 환자는 이런 간호사들의 '사명감'에 기대어 하루하루 회복하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전국 확진자 8961명 중 대구가 6411명, 경북이 1256명을 차지하고 있다. 확진자 10명 중 9명은 대구 혹은 경북 출신이다. 사망자 111명 중 5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 두 지역에서 숨을 거뒀다. 상황이 언제까지 장기화할지 몰라 보건복지부는 아직까지 대구·경북 파견 간호사 모집 창구를 열어두고 있다. 전국 간호사들의 지원서는 지금도 계속 메일함에 쌓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