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때 사두자' 한 달 5300억원 몰려
- BMW족(버스·지하철·도보)까지 관심갖는 유테크
- 3월 바닥론 솔솔… 부도·상폐 등 흉흉한 소식도
- 국내서도 원유 ETF·ETN·DLS 등 투자법 다양
- 원금 손실 위험 높아 여유자금으로만 접근

딱 한 달만에 반토막난 유가 그래프를 보고 있으면, 옛 신화 속에 나오는 ‘세이렌’ 일화가 떠오른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홀려서 해친다는 전설 속의 반인반수 생명체다(스타벅스의 초록색 로고 이미지가 바로 세이렌이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투자자들 입장에선 ‘유가 3월 바닥설’이야말로 세이렌의 노래를 뺨치게 달콤하고 매혹적일 것 같다.

국제 유가는 지난 달 24일만 해도 서부텍사스유(WTI) 기준 배럴당 51달러에 거래됐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0일엔 22달러선까지 수직낙하했다. 지난 18일에는 전날보다 24.4% 대폭락해 간신히 20달러선에 턱걸이하면서 18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짧은 기간에 압축 폭락을 해서 그런지, 금융회사 상담 창구는 물론, 온라인 재테크 카페마다 “요새 유가가 엄청 떨어졌다고 하는데, 지금 사두면 언젠가는 회복되지 않을까요?”라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이미 바닥권이라며 진입한 자금도 적지 않다. 22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에만 원유 등에 투자하는 원자재 펀드로 5300억원이 유입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국제유가 폭락 여파로 휘발유 가격이 8주째 하락했다. 2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 주간 단위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전주보다 31.6원 내린 ℓ당 1천472.3원으로 2018년 11월 단행된 유류세 인하 조치 영향을 제외하고는 2015년 1월 이후 5년여 만의 최대 낙폭이다. 사진은 22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2014~2016년 유가 76% 하락
세계 금융시장을 녹여버린 유가 급락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석유 패권을 둘러싼 산유국 치킨 게임이 겹쳐지면서 발생했다.

직전 20달러 유가 시대는 지난 2014년이었다. 당시 사우디 석유장관이었던 알 나이미는 “유가가 20달러가 되어도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고, 100달러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던 유가는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6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유가는 76% 하락했는데, 2016년 초에는 최저 26달러 선까지 확인하게 됐다.

이효석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사우디는 전통적인 점유율 확대 정책으로 돌아왔고 코로나 사태로 유동성은 경색된 상황이어서 현 시점에서 유가 반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2024년을 전후로 한 시점까지는 장기 저유가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를 고려하면 단기간 내에 장기 저유가 평균선인 50달러선까지 재진입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이 연구원은 덧붙였다.

급락하는 유가


◇상폐·액면병합 등 흉흉한 오일마켓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세계 경기가 회복세에 진입했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유가 하락을 점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유가 상승에 베팅했는데, 예상치 못한 코로나 쇼크와 산유국 다툼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됐다.

미국의 원유 관련 회사인 트라이포인트 오일앤가스 생산 시스템은 지난 18일 파산 신청을 했다.

뉴욕 증시에서 유가 관련 상품을 거래하던 투자자들 역시 손해가 막심하다. 원유 가격의 3배만큼 움직이는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 상품인 OILU는 오는 30일 상장 폐지될 예정이다. 20일 기준 0.39달러에 마감되었는데, 최근 1년간 최고치는 36달러였다. 말 그대로 1년 동안 무섭게 추락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원유·천연가스와 같은 원자재 관련 상품이면서 3배 레버리지로 움직이는 ETF인 ERX, GASL, GUSH 같은 상품들은 오는 24일부터 구주 100주가 신주 1주로 교환되는 방식으로 액면병합된다. 주가가 너무 떨어져서 거래도 힘들게 되다 보니, 액면 가격이 낮아진 주식들을 합쳐서 가격을 높이는 액면병합에 나서는 것이다.

◇'유린이'도 관심 갖는 유(油)테크
투자자들 사이에선 말그대로 유테크가 가장 핫하다. 주유소에서 휘발유 넣어본 적밖에 없는 유린이(유가+어린이 투자자를 결합한 단어)에서부터 고층 빌딩을 몇 채나 갖고 있는 거액 자산가들까지 '지금이 바닥'이라면서 관심 갖기 시작했다.

변동성이 워낙 커서 원금 손실 위험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꼭 유테크를 하고 싶다면 원유 ETF가 가장 쉽고 편하다. ‘삼성 코덱스 WTI원유선물’과 ‘미래에셋 타이거 원유선물’ 등이 대표적이다. 소액으로도 투자 가능하기 때문에 유가 반등에 베팅한다면 고려해 볼만 하다.

원유 ETN(상장지수채권) 상품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다. 다만 유가 급락에 반등을 노린 투자자들이 크게 몰리면서 매매 가격이 지수보다 고평가되어 거래된 적도 있으니 매매시 주의해야 한다.

원유 DLS(파생결합증권)도 나쁘지 않은 대안이다. 원유 DLS는 유가가 가입 시점의 5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이 나도록 설계된다. 기존 투자자들은 유가 급락으로 평가 손실이 커져서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신규 투자자라면 역발상 관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최근엔 유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연 9~10% 정도의 고수익 원유 DLS 상품까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