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조달비용·국가부도지표 일제히 치솟아… 외환건전성 '경고음'
外人 이탈에 증권사 달러 수요↑… "한미 통화스와프 수준 대책 필요"

금융기관에 달러를 공급하는 외화자금시장에서 달러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극대화되면서 달러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10년 만에 최고치까지 올랐고, 외환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에도 일제히 경고등이 커졌다.

정부가 국내외 은행들의 선물환 포지션을 확대하는 '컨티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다.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이탈하고 있는데다 글로벌 주가 폭락에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달러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외환보유고로 달러자금을 지원하는 방안까지 제시했지만, 달러 유동성 부족이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한미 통화스와프 수준의 대대적인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18일 외화자금시장에서 원·달러간 스왑베이시스(1년물)는 -160bp(1bp=0.01%포인트)로 2월말(-75bp)보다 대폭 확대됐다. 스왑베이시스는 통화스왑(CRS)와 이자율스왑(IRS) 금리의 격차로, 마이너스(-) 폭이 커질 수록 달러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상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과 함께 외환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우리나라의 CDS프리미엄(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은 올해 1월 20bp로 떨어졌다가 최근에 50bp대로 뛰었다. 16일 54bp, 17일 51bp를 기록했다. CDS 프리미엄은 기업이나 국가의 파산 위험에 대비한 보험료 성격의 수수료율로, 신용도가 높아 부도 가능성이 작을수록 CDS 프리미엄이 낮아진다.

시장에서 달러가 부족해진 건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간 영향이 크다. 달러와 원화를 교환하는 스왑시장에서 달러를 돌려받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은 연일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심리적 지지선인 1600선이 붕괴된 채 마감했는데, 외국인들이 5800억원어치를 순매도한 영향이 컸다. 이날까지 외국인이 10거래일간 순매도한 규모는 8조83억원에 달한다. 이에 원·달러 환율도 같은 날 2.2원 오른 1245.7원으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7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

국내 증권가에서 달러 수요가 급증했다는 점도 '달러 가뭄'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해외 증시가 크게 내리면서 해외지수를 추종하는 주가연계증권(ELS)를 판매한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증거금을 추가납부하는 '마진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마진콜은 투자 손실이 커져 일정 잔액 이하로 떨어질 경우 자산을 강제로 청산하는 조치를 말한다. 스왑시장에서 달러를 찾는 주 수요층으로 외국인과 함께 국내 증권사들이 지목되는 이유다.

한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ELS 판매 규모가 컸던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달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달러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주가 폭락으로 인한 헤지(Hedge) 규모 마저 늘어나 증권사의 타격이 상당하다"고 했다.

정부는 이같은 달러 자금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첫 번째 대책으로 국내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40%에서 50%로, 외은지점은 200%에서 250%로 각각 올리는 방안을 내놨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 확대를 통해 은행들의 외화자금 공급여력이 확대되는 만큼 달러 공급에 숨통이 트일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많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차원의 달러 수요가 폭증하고 있어 은행의 달러 공급 여력을 늘려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통한 지원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서는 차후 외환건전성을 고려해 볼 때 궁극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통화스와프처럼 대대적인 외화공급을 보장할 만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계 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스왑 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몰려 변동성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는 시그널 효과는 줄 수 있다"며 "다만 미국 경기가 리세션(Recession·침체)에 진입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이번 대책이 충분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국내은행의 딜링룸 관계자는 "미국 쪽에서 단기자금 경색이 시작되는 것이 문제여서 선물환 포지션 조정 정도로 해소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전염병 확산에 전세계가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통화스와프와 같은 대대적인 대책이 아니면 효과가 단기에 그치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