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에서 산업용 알루미늄 프레임을 만드는 A회사는 17일부터 야간 조업을 중단했다. 몇 달 전 수주했던 일감이 바닥을 드러내면서다. 이 회사 대표 B씨는 "2~3달전 주문 받았던 일감 이후로 신규 수주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조업 시간을 줄이게 됐다"며 "그나마 이 회사는 어느 정도 일감이 확보돼서 다행이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최대 산업단지인 반월·시화 공단을 중심으로 한 안산 지역 기업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이 꺾이고 적자로 돌아섰다. 박미경 안산상공회의소 조사팀장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안산 지역 기업들의 매출은 20~30% 감소했다"며 "수출과 내수가 함께 쪼그라들면서 자동차 뿐만 아니라 기계, 전자 등 모든 업종에서 기업 활동이 얼어붙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벌써 일시 휴업하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한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며 "나머지 기업들도 올해 다수가 적자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A회사의 경우 정부가 준비하는 추가경정예산으로 혜택을 받는 게 없다. 추가경정예산의 대부분은 대출 연장이나 또는 고용안정기금 등 자금줄이 말라 죽을 고비에 있거나, 또는 기업이 문을 닫거나 실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수에 도움이 되어야 정책이 피부로 느껴질 것 같다"고 B대표는 말했다.
코로나19로 정부와 정치권이 추가경정예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달 초 11조7000억원 규모로 마련된 추경 예산은 현재 18조원까지 증액하느냐 여부로 정치권에서 줄다리기가 진행 중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계별로 월 100만원씩 지급해달라는 이른바 '재난기본소득'이나 자영업자,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생활지원금'을 지급해 달라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 현장에서는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추경 예산의 내용을 뜯어보면 기업 입장에 절실한 '총수요 확대' 효과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응 예산 2조3000억원을 제외한 진짜 추경 예산은 9조4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소상공인·중기 대출 확대가 1조7000억원이고, 고용 유지 및 장려금이 1조2000억원이다, 저소득층·고령자·아동수당 대상자에 대해 추가 지원금을 주는 게 2조4000억원이다. 기업에게 절실한 정부발 투자 확대나 내구재 소비 증가 방안 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수요절벽에 대해서 추경은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적인 전염병과 다르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와 워릭 맥키빈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교수(ANU)가 지난 2004년 발표한 '사스의 글로벌 경제 비용 추정(Estimating the Global Economic Costs of SARS)'에 따르면 사스로 중국은 1.05%포인트(p) 정도 경제성장률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 하락이 0.37%p, 제조 원가 상승이 0.34%p, 금융비용 상승이 0.33%p 등 원인은 다양했다. 그리고 그 폭도 당시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에 비하면 감내할만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경우는 수요 자체가 대규모로 파괴되는 게 특징이다. 국가 단위로 격리 및 국경봉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르디 갈리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갈리 교수는 "일시적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것은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감내할 만 한 것"이라며 "진짜 문제는 기업들이 고용을 축소하고 투자를 기피하는 간접적인 산출 감소"라고 설명한다. 수요 절벽에 당면한 기업들의 대응책이 진짜 경제적 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 산업의 경우 "지금처럼 수요 위축이 계속 될 경우 올 하반기에 더 이상 버틸 체력이 없는 기업들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여러 관계자들이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기업들의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그 해 1.2%P 가량 내려갔다는 바스코 카르바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 분석이 더 잘 들어맞는 셈이다.
정부는 수요 절벽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우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늘리고 적격담보대출 증권의 범위를 넓혔다. 이것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보는 언론을 못 봤다"며 한은이 중소기업 상대 대출 지원을 한 것을 경기부양책이라 주장하고 있는 정도다.
재난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지자체들도 답이 없긴 마찬가지다. 지자체는 지난 4~5년간 경쟁적으로 부채 상환과 균형재정에 몰두하면서 빚이 거의 없다. 그리고 지자체는 엄격하게 추경 요건이 제한되는 중앙 정부와 달리 추경 내용 및 회수에 제약이 없다. 훨씬 더 '기동적인 재정 정책'이 가능함에도,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내놓지 않는다. 지자체 부채가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까 봐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 시장의 경우 중앙정부에 4조8000억원 규모의 긴급재난생활지원금을 요구하지만, 정작 서울시가 긴급 지원금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소비-생산-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최소한 몇 개월 간 무너질 수 밖에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정책 목표 가운데 하나는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상황에 가깝게 생산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느냐일 게다. 산업 현장에서는 한결 같이 수요 절벽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부는 '가만히 있으라'는 반응 일색이다. 앞으로 몇 달 뒤가 두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