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성장률이 도대체 어느 시절의 일이던가. 최근 2%대로 추락한 수치마저도 달성 가능한지 불안하기 그지없다.

저성장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각국이 짊어지고 있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저성장이 항상 문제이자 질병이기만 한 것일까? 미국 휴스턴대 경제학 교수인 디트리히 볼래스(Dietrich Vollrath)는 '이미 충분히 성장했다'에서 저성장은 선진 경제가 극복해야 할 골치 아픈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20세기에 이룩한 성공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1950~2000년 일인당 실질 GDP 성장률은 2.25%였지만, 2000~ 2016년엔 1%에 불과했다. 20세기 성장률 수치의 절반을 넘는 1.25%가 21세기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밀레니엄 시대에 IT와 각종 기술혁신을 통해 신경제를 주도했던 미국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성장회계(growth accounting)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이 사라진 1.25%를 설명하는 첫째 원인은 인구 구조의 변화였다. 20세기에 가전제품 혁신과 피임 기술 발달로 여성의 가사 노동은 줄어들고 사회참여가 늘면서 출산율이 크게 하락했다. 그 결과 21세기에 노동력으로 유입되는 인적 자본의 절대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 원인이 64%를 설명한다.

둘째, 경제활동의 중심이 물리적인 재화 생산에서 서비스 공급으로 이동한 게 원인이다. 20세기에는 기계화·자동화·경영 혁신 덕분에 농업·광업·제조업에서 인력 투입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됐고 그 결과 보편적 생활수준이 높아졌다. 21세기엔 문화·교육·건강 관련 서비스 사업이 크게 성장했으나, 구조적으로 사람의 투입을 줄이기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도 상대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이 원인이 16%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독점기업의 시장 지배력 공고화에 따른 시장 역동성 약화가 12%, 주택 문제 등 노동자들의 지리적 이동성 제약이 8% 정도를 차지한다. 반면 규제 강화, 양극화, 중국과의 무역 등 요소는 별로 설명력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저성장은 한 세기에 걸쳐 생활수준의 향상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추구해 온 선진국의 선택이 낳은 숙명이다. 이런 판국에 출산율을 다시 높이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저자는 일단 고성장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본다. 대신 산업 간, 기업 간, 지역 간 자원 이동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본다.

저자의 정교한 분석에 비해 대응 방안 제시는 다소 허술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낡은 시대의 성장론이나 분배론의 프레임을 벗어나서 21세기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