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5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1% 전격 인하하며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다. 2015년 이후 5년 만이다. 연준은 지난 3일(50bp 인하)에 이어 두 차례 '빅컷(큰 폭의 금리인하)'을 단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약 7년간의 '제로금리' 시대로 다시 회귀한 것이다.

연준의 이같은 결정은 사실상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Recession)기에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미·중 무역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로 장기 침체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엘(L)자형 장기침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연준은 15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하며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제정책 기조를 전면적으로 새로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경기가 올해는 반등 할 것'이라는 기존 정책방향을 완전히 탈피하고 정책 대응책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범정부 거시금융경제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과거 감염병 사례에서 나타난 글로벌 경제의 일시적 충격 후 반등, 이른바 V자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5년만에 양적완화(QE)시대로 회귀… 시장엔 양면적 신호

연준은 기준금리를 0%대로 낮추는 '제로금리'와 더불어 7000억달러(약850조원) 규모의 양적완화(QE) 프로그램도 실행한다. 연준은 성명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은 단기적으로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경제전망에 위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제로금리' 결정을 두고 8년 전 마리오 드라기 ECB 전(前) 총재가 유로존 위기에 맞서 전례없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선보이며 남겼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Whatever it takes)"라는 말을 언급한다. 연준이 현재 상황을 예전 금융위기때만큼 심각하게 인식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강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연일 폭락하는 주가 등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최종대부자'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정책 의지를 시장에 보여줬다.

코스피가 16일 3% 넘게 하락해 1710대까지 후퇴했다.

이같은 연준의 판단은 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신호를 보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연준이 전례없는 조치를 취해야할만큼 세계 경제가 악화됐다는 신호를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준의 파격적인 빅컷 이후 16일 개장한 아시아 증시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다우 선물 지수도 하락 중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준의 조치에 시장에서는 오히려 걱정이 커졌다"면서 "너무 큰 위기가 다가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증폭된 것이다. 전례없는 조치에 '연준이 저정도로 할 정도면'하는 우려가 나오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연준의 이번 조치는 주요국 재정·통화 당국의 경쟁적인 부양 정책 도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기침체에 맞선 정부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통해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감소시키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본은행(BOJ)은 당초 18~19일 예정됐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16일 앞당기고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매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금리인하'는 제한적 수단…단기 효과있지만 경기회복에는 한계

전문가들은 연준의 파격적인 조치가 단기적으로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봤다. 신성환 한국금융학회장(홍익대 경제학부 교수)은 "시장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면서 "달러 유동성을 할 수 있는만큼 다 풀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국내 경제에도 상당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금리 인하 조치는 일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 경제에도 스필오버(파급)에 따라 시일이 걸리겠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3월 16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금리인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코로나19로 시작된 '실물경제 위기'기 때문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와는 달리 완화적 통화정책 등 금융안정 정책이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감염병으로 공장이 문을 닫고 인적·물적 이동이 제한되는 등 '공급 충격' 우려가 큰 상황에서 '수요 충격' 완화를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통화정책 특성상 자금이 필요한 곳에 가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만으로는 감염병으로 타격을 입은 곳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결국 양적완화 등의 정책이 타격을 입은 미국 실물 경제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피해를 입은 사람들 손에 어떻게 돈을 쥐어주는가가 관건이다"라고 지적했다. 연이은 금리 인하로 정책여력이 더이상 남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다. '제로 금리' 이후에도 감염병 사태가 더 악화된다면, 이를 대비할 정책 카드가 재정밖에는 남지 않은 상황이다.

기획재정부, 한은 등 정책당국의 대응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조7000억원 규모의 코로나 대응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기재부의 올해 공식적인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4%다. 한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1%로 낮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당국이 보다 기민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성환 한국금융학회장은 "한은이 사후적 대응으로 뒷북친다는 비판을 받는데, 이번에도 미국 금리인하 이후 사후적으로 내리는 측면이 있다"면서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김용범 차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복합위기 상황까지 가정하며 금융시스템 및 외환부문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고 정책수단을 철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