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코로나 쇼크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럽 자동차 공장들은 중국발(發) 부품 수급 차질이라는 1차 충격에 이어, 유럽 내 확진자 급증으로 자동차 공장을 하나둘 문 닫아야 하는 2차 충격파를 맞고 있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도 주요 부품 공급처인 멕시코의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연쇄 셧다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중국이 겪은 '코로나 쇼크'를 이번엔 유럽과 미 대륙이 시차를 두고 똑같이 겪고 있는 것이다. 소비와 공급 양 측면에서 축소 압력이 가해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불황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유럽과 북미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로 중국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은 우리 자동차 업계가 핵심 수출 시장으로 키워온 곳이어서 이번 충격파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자동차 생산 기지가 멈춘다
피아트크라이슬러(FCA)는 12일(현지 시각)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이탈리아 내 공장 4곳을 임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부품 수급 차질로 공장을 세운 경우는 있었지만, 코로나 확진자 발생을 우려해 공장을 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시 폐쇄될 공장은 이탈리아 중부 나폴리 인근 4곳으로, 주말 동안에 폐쇄하고 이후 상황을 보겠다는 방침이다. FCA는 나머지 이탈리아 공장에선 하루 생산량을 줄이고, 직원 간 물리적 거리를 넓히도록 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자동차 공조 장치를 생산, 르노·푸조·BMW 등에 납품하는 부품 기업 MTA는 지난달 24일부터 공장을 폐쇄했다. 지난 6일 일부만 겨우 가동을 시작했지만 판매·구매·고객 서비스 등 업무는 여전히 마비된 상태다. 현재 이 지역은 교통·물류가 봉쇄되면서 경제활동이 사실상 멈춰 있다.
확진자 수가 4000명을 넘긴 스페인에 있는 일본계 자동차 부품 회사 덴소·후지쓰도 16일부터 코로나 확산세, 부품 수급 차질 문제 등으로 공장을 세운다. 독일과 프랑스도 코로나 확산세가 빠른 만큼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3000명을 넘은 이탈리아(106만대), 프랑스(233만대), 스페인(282만대), 독일(554만대) 4개국의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은 1175만대로, 세계 전체 생산(9740만대)의 12% 수준에 달한다. 유럽 자동차 산업은 지난달에만 25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대서양 건너 미 대륙 상황도 심상치 않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미시간주에서 확진자 10명이 나오자,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월요일(16일)부터 될 수 있으면 재택근무를 추진한다"며 "출근이 꼭 필요한 공장 생산, 제품 개발, 고객 관리 및 애프터세일즈 등 부문은 작업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드의 짐 해킷 최고경영자(CEO)도 같은 날 임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통보했다. 포드는 다음 주 예정된 신차(브롱코) 출시 행사를 연기했다.
멕시코 경제부 장관이 최근 "부품 수급 차질로 3월 둘째 주 이후 생산 중단 사태가 올 것"이라고 밝힌 것도 북미 자동차 업계에 큰 부담이다. 미국은 자동차 부품 수입의 39%를 멕시코에, 8%를 캐나다에 의존하고 있다. 앞서 배라 회장은 "부품 수급 차질이 3월까지 이어질 경우 픽업트럭인 실버라도와 타호, SUV인 서버번과 유콘 등이 생산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픽업트럭과 SUV는 수익률이 높은 차종들이어서, 이들이 생산 차질을 빚을 경우 자동차 업체들이 입는 타격은 더 커진다.
◇우리 수출 10대 중 7대가 유럽·북미로 가는데…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우리 자동차 업계가 받는 피해도 가중되고 있다. 먼저 해외 출장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해외 연구개발(R&D) 및 비즈니스 기회 모색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외부에 알려진 해외 출장만 13번을 다녀온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올 들어선 1월 초 미국 CES(소비자가전쇼)와 스위스 다보스포럼 출장을 다녀온 후, 외국에 나가지 못하고 국내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현대·기아차 임직원들도 발이 묶였다.
'수출 절벽' 공포도 밀려오고 있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2017년 사드 보복 이후 무너진 중국 시장의 대체 시장으로 유럽·미 대륙에서 판매 확대에 매진해 왔다. 지난해 우리 완성차 업체 수출(240만대) 10대 중 7대가 북미(108만대)와 유럽(65만대)으로 갔다. 특히 북미·유럽은 수익성이 높은 SUV 판매가 급증했던 지역이라, 수출 금액으로 보면 중요도가 더 크다.
지난달 한국 자동차 산업은 코로나 여파로 생산(-26.4%)과 수출(-25.0%)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이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걸 감안하면, 수출은 최소 5월까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글로벌 자동차 수요는 최소 6월은 돼야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추정한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6월 이후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선, 생산량을 바짝 끌어올려야만 한다"며 "일시적 초과 근로 허용 등 정부의 규제 완화와 노조의 전향적 협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