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외 건설 수주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던 건설업계가 국제유가 급락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규제로 국내 주택시장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해외시장마저 쪼그라들 가능성이 커졌다. 연초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수조원대의 계약을 따내며 기대감에 부풀었던 건설업계가 이제 최악의 경우 중동 발주가 취소되는 게 아닐 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4.50% 하락한 배럴당 31.5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7.18% 하락한 33.2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중동 발주에 영향을 미치는 두바이유는 3.47% 내린 36.31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두바이유는 배럴당 68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감산 협의에 실패한 뒤 오히려 원유 증산을 추진하며 유가는 반 토막이 났다. 국제유가가 내리면 원유를 수출하는 중동국가들의 재정이 악화하고, 에너지기업들의 경영 사정도 어려워진다. 예정됐던 발주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심하면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기 전만 하더라도 해외 수주 분위기는 좋았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12일까지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은 95억4402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8% 증가했다. 특히 해외 수주 텃밭인 중동의 경우 57억3251만달러로, 1006% 늘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건설 담당 연구원은 "부동산 규제의 여파로 국내 수주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수주가 이를 전부 메울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그러나 유가 급락은 이러한 투자 포인트에 훼손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시장도 안심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대한건설협회(대건협)에 따르면 1월 국내 건설 수주액은 10조790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0% 증가했다. 하지만 대건협은 "지난해 1월 실적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실적이 워낙 좋지 않아 올해 실적이 좋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2020년 건설경기 전망'을 통해 올해 건설수주액이 201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건설 사업자도 대체로 건설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2월 건설업 경기실사지수(CBSI)는 전달보다 3.2포인트 떨어진 68.9를 기록했다. 2월 CBSI 기준으로 7년 만에 최저치다. CBSI는 건설 사업자를 대상으로 매달 조사하는 경기 체감지수다. 100을 밑돌면 건설업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특히 그동안 국내 건설업계를 지탱하던 주택시장 여건도 악화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월 전국 분양경기실사지수(HSSI) 전망치는 66.7로 전달보다 22포인트 하락했다. HSSI는 공급자 입장에서 분양을 앞두고 있거나 분양 중인 단지의 분양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다. 이 지수가 100을 초과하면 분양 전망이 긍정적이라는 의미이고, 미만이면 그 반대다.
신서정 SK증권 연구원은 "현재 상황이 지속하면 해외 발주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부 부동산 규제 이슈가 있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주 동력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