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생존 스타트업 비율 27% 수준… 유럽보다 크게 낮아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도 늘고 있어"
창업 지원 넘어 '스케일업'에 초점 맞춘 정책 전환 필요

지난해 스타트업 신설 스타트업 법인수는 10만8874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규 벤처투자 금액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형적으로는 붐에 가까운 스타트업 생태계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실을 들여다보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통계가 부각되고 있다.

10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주요 평가 지표로 고려되는 '고성장 기업'의 비중이 6%대에 머물고 있고, 1~3년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지만 5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의 비중은 예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성장기업은 단시간에 매출, 직원 수 등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기업을 의미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스타트업의 1~5년 생존율 비교.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경우 전체 스타트업 기업 중 고성장 기업 비율은 6.5%로 영국(12.9%), 이스라엘(11.4%)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스타트업 창업은 양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창업기업이 규모를 키우지 못한 채로 남아있거나 소멸하는 비율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5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은 27% 수준으로 프랑스(44.3%), 영국(41.1%) 등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벤처업계에서 정부 정책이 스타트업 창업을 장려하는 단계를 넘어 '스케일업(Scale Up·고성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케일업이란 고용인력이 10명 이상이면서 매출 또는 고용이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성장하는 기업을 뜻한다. 특정 산업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높은 성장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ICT 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의 중소‧중견기업도 포함한다.

스케일업 기업의 육성은 이미 10여년전부터 미국, 영국 등지에서도 주요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이 기업들이 국가 경제의 혁신역량, 생산성, 일자리 창출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카우프만 재단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지난 2010년 전체 스타트업의 5%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그해 전체 신규 일자리의 3분의 2를 창출한 바 있다.

스타트업은 창업 이후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의 결과를 내기까지 일반적으로 두 번의 큰 위기를 겪는다. 창업 초기에 사업화 단계에서 자금상 어려움을 뜻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제품·서비스 양산 이후 시장 경쟁으로 인해 수익을 내기 힘든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을 맞닥뜨리며 상당수의 기업이 쓰러지게 된다.

국내 스타트업의 고성장 기업비율이나 5년이상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이 낮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규리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스타트업 투자시장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고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어 혁신 생태계가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또 VC 시장이 정부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예비창업이나 초기 단계 기업에만 쏠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벤처캐피탈 시장의 정부 자금 의존도는 62%로 미국(17%), 영국(24%), 프랑스(45%), 일본(36%)보다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창업지원 관련 정부 사업예산도 예비창업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몰리는 경향을 보이며, 지원 분야 역시 한정적이다. 중장기적인 안목이나 과감한 실험적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유럽 최대 스타트업 축제인 '슬러시(slush)'.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은 수년전부터 이미 정부 차원에서 스케일업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중소기업청(SBA) 주도로 ‘스케일업 아메리카 프로그램'을 출범시켜 지역 중소기업을 밀착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자국 최대 성장 자본 공급 기관인 BCG 등을 통해 스케일업에 필요한 자금 공급을 위해 직‧간접적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정부의 스타트업 창업 지원 확대는 결과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커지는데 일조했지만 반면 정부 지원 사업이 끊기면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소위 '좀비 스타트업'이 많아지는 반작용도 있었다"며 "스타트업이 국가 혁신을 이끌고 일자리 창출 등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창업 자체 보다는 스케일업에 초점을 맞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