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환자 수혈⋅혈액제제 생산 차질 우려… 수입확대로 대응
GC녹십자⋅SK플라즈마 미국 혈액원 늘리거나 신설 검토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헌혈을 꺼리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혈액 보유량이 불안정한 수준에 도달했다. 정부 위기대응 매뉴얼의 ‘주의’ 단계인 3일치 미만 분량에 근접해 있다.

10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혈액 보유량은 연일 3일분 안팎에 그치고 있다. 혈액 보유량은 지난 6일 3일분, 7일 3.2일분, 8일 3.8일분 등에 머물렀다.

혈액 수급 위기 단계는 혈액 보유량(적혈구제제)이 5일 미만이면 '관심'(blue), 3일 미만이면 '주의'(yellow), 2일 미만이면 '경계'(orange), 1일 미만이면 '심각'(red)으로 나뉜다. 혈액 당국은 안정적인 혈액 보유량을 5일분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기준으로 혈액보유량은 2만 143유닛, 적정 혈액보유량인 2만6000유닛의 77% 수준으로 조사됐다.

지난 5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예하 39 동원지원단에서 장병이 우한 코로나 사태로 인한 혈액 수급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헌혈하고 있다.

혈액보유량이 줄어든 배경에는 우한 코로나 감염 우려로 개인헌혈을 꺼리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재택근무와 학교의 개학 연기 등으로 단체 헌혈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혈액 부족이 미칠 영향이다. 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수술환자 등을 위한 혈액 부족 우려가 나온다. 동시에 혈액으로 의약품을 만드는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우한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정상적인 혈액제제 생산을 위해 해외에서 혈액 수입을 늘리거나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은 우한 코로나 사태로 혈액 부족이 가시화되자 감염 우려를 덜어주기 위한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한적십자 채혈직원의 감염 여부를 전수조사한 게 대표적이다. 혈액원 모든 직원의 몸 상태를 매일 모니터링하고 채혈 때 직원뿐 아니라 헌혈자도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한 것도 불안감 해소를 위해서다. 또 각 의료기관에는 혈액 수급 위기 대응 체계를 신속하게 마련해 가동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내에서 혈액제제를 생산하는 두 업체인 GC녹십자와 SK플라즈마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GC녹십자의 경우, 헌혈 인구가 계속 줄면 5월 이후 혈액제제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분기(약 3~4개월) 전에 적십자로부터 수집된 혈액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는 5월까지는 물량이 있다.

GC녹십자는 미국법인인 GCAM을 통해 혈액 매입을 위해 12개 혈액원을 두고 있으며, 올해 안으로 14개로 늘릴 계획이다. 혈액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다.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혈액제제는 공급 부족시 제한적으로 수입이 허용된다.

2015년 SK케미칼에서 분사해 혈액제제 전문업체로 설립된 SK플라즈마 역시 혈액 부족 시 수입량을 예년보다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안정적인 혈액 공급을 위해 미국에 혈액원을 세우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SK플라즈마 관계자는 "미국에 아직 혈액원이 없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설립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혈액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그때그때 수입하기보다는 혈액원을 두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입량이 늘어나면 기업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수입 혈액 단가가 국내에서 적십자사를 통해 받는 가격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혈액제제는 정부가 관리하는 국가보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돼 있어 수입 혈액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혈액제제 가격을 곧바로 올릴 수는 없다.

업계는 수익성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나라 혈액제제를 대신 생산해주는 위탁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경북 안동 바이오산업단지 내에 60만ℓ 규모 혈액제제 생산설비를 보유한 SK플라즈마가 지난 12일 이집트 국영 제약사 아크디마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게 한 사례다. 100만ℓ 규모 이집트 원료 혈장을 SK플라즈마 안동공장에 보내 생산하기로 했다.

이집트는 자체 혈장 분획 시설이 없어 혈액이 있어도 혈액제제 생산이 어렵기 때문에 자국민 혈액을 한국에 보내 혈액제제를 위탁생산하고, SK플라즈마는 남는 공장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 향후 SK플라즈마는 이집트에 기술이전을 포함해 혈액제제 분획 공장 설립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혈액제제란

혈액은 원심분리기를 통해 혈구(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와 혈장으로 분리할 수 있다. 이 중 55%를 차지하는 혈장에는 알부민, 항체, 혈액응고인자 등 100여 개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이들 단백질을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분리해낸 뒤 의약품으로 만든 것이 혈장 분획 혈액제제다. 이들 혈액제제는 선천적 면역결핍질환, 백혈병, 혈우병, 화상 등의 치료제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