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선두로 전세계 중앙은행 금리인하 행렬에 동참
"코로나 사태, 금리인하로 막을 수 없다" 회의론 등장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기부양을 주도했던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다시 팔을 걷어부쳤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수준으로 번지면서 중앙은행이 또 다시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올초 이미 다수의 신흥국이 금리를 인하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50%포인트(P) 전격 인하하면서 이런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중앙은행의 발빠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미 증시는 하루새 급등락을 오가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1%를 밑돌면서 공포심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만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로 코로나19의 경기 불안을 잠재우긴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만성적인 저금리로 '통화정책 무용론'이 언급되는 상황이었던 데다, 현 상황은 10년 전 유동성 경색에 기반한 금융위기 때와는 시작점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겨 일어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통화정책을 통한 수요 진작으로 방어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美 이어 '금리인하' 행렬 동참하는 중앙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3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내리기로 한건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긴급회의 직후였다. 연준이 금리를 0.50%P 인하한 것도, 정례회의를 거치치 않은 것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글로벌 공조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성명을 통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잠재적 충격을 감안해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고, 모든 적절한 정책 수단을 다 사용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올해들어 기준금리를 인하한 국가는 주요국(OECD회원국·G20) 25개국 중 11곳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2월 중에만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대거 금리를 내렸다. 연준의 결단이 있던 날에는 호주중앙은행(RBA)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수준인 0.5%로 낮췄고, 4일(현지시간)에는 캐나다 중앙은행이 0.5%P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캐나다의 경우 2015년 7월 이후 첫 인하였다. 이들 중앙은행은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선제적 대응에 합류했다.
이제 이달 중 금리인하의 공을 건네받은 건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 중앙은행(BOJ), 영란은행(BOE)이다. 일본은행과 ECB는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혹은 제로 수준임에도 추가적인 완화조치를 예고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일 예정에 없던 담화를 내고 풍부한 자금공급과 시장 안정을 약속했다. 지난달 27일 금리를 동결했던 한국은행도 인하 행렬이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열 총재는 4일 메시지를 내고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미 연방준비제도(Fed) 금리인하 등 정책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리인하 행렬의 선두에 선 미 연준도 추가 금리인하가 기정사실화 돼 있다. 오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정책금리를 0.25%P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연준의 금리는 0.75~1.00%로 낮아지게 된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5일(현지시간) "우리는 경제를 지지하기 위해 우리의 수단과 조처를 적절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말해 금리인하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10여년 전과 다른 정책 환경… 중앙은행 회의론도 '솔솔'
이처럼 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을 위한 인하행렬에 뛰어들었지만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가장 우선 제기되는 근거는 금리의 여력이다. 미 연준의 경우 2007년 7월 5.25%였던 금리를 2008년 12월 0% 수준까지 떨어뜨렸지만 2018년말까지 겨우 2%대로 올려놓는 데 그쳤다. 일본과 ECB의 정책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수준이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더 내리려 해도 여력이 많지 않는 상황이다.
또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QE)도 불어날 대로 불어나 있다. 2008년 1조달러였던 미 연준의 보유자산은 2017년 4조5000억달러까지 늘었다. 뿌린 돈을 거둬들이려 할 때마다 테이퍼탠트럼(긴축발작)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가 제기돼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2013년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긴축을 시사한 이후 신흥국 통화가치, 주가가 폭락했다.
그간 풀린 유동성 만큼 쌓여있는 부채가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위기를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줘서 기업의 수익성이 저하된다면 결국엔 신용경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집계한 세계 부채 규모는 지난해 3분기 기준 253조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침체된다는 신호가 오면 기업 부도에 대한 우려가 신용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미 연준이 이번에 전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한 이유도 지금 부채가 워낙 많으니 신용위기를 막는 차원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경기침체는 10여년전 금융위기와는 근본부터 달라 통화정책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금리를 인하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 내 공급망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이 제한돼서 나타나는 소비·투자 침체 역시 유동성 공급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중앙은행의 결단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연준이 0.50%P 금리인하를 단행한 이후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공포심리에 뉴욕 증시는 급락했다. 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와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자 다우존스 지수는 3.58% 떨어졌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1%를 밑돌아 사상 최저치를 찍고 있다. 정책의 여력과 환경이 중앙은행의 한계를 시험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경기부양을 위해 할일을 한다'는 자세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의 여력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시장은 과거의 사례를 통해 학습을 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린다고 코로나19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주체들 간 상호작용이나 글로벌 공급망의 문제로 유동성이 빠져나가는 것을 일부 방어하는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