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장비에 들어가는 자체칩 '리프샤크' 개발 지연
"알카텔루슨트 합병 이후 본 사업 집중 못해 경쟁력 저하"
인텔·마벨 협력으로 속도 내는 노키아 "올해 본격 도약"

지난 2일(이하 현지 시각) 핀란드 통신장비 업체 노키아는 2014년부터 회사를 이끌어 온 라지브 수리 CEO(최고경영자) 후임으로 '핀란드의 한전' 격인 '포텀'을 이끌고 있는 페카 룬드마크를 임명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4일 노키아는 본사 5G(5세대) 개발 인력을 제외한 직원 148명을 올해 안에 감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5G 칩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기지국·중계기용 부품을 만드는 '마벨'이라는 회사와 협력한다고 했다. 이 회사는 이미 관련 부품을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곳이다. 바로 다음날인 5일 노키아는 비슷한 이유로 인텔과 기술 협력을 발표했다. 3월 이후 불과 나흘 동안 쏟아진 뉴스다. 노키아에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노키아 발목 잡은 '리프샤크'

그래픽=이민경

업계와 외신을 종합하면, 노키아는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에릭슨 대비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이유로 이 같은 조직 쇄신, 사업 협력을 추진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 집계를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18.9%로 3위다.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 화웨이가 기술 투자, 이로 인한 가격 경쟁력 등을 무기로 멀찍이 앞서 있고, 노키아와 엎치락뒤치락 하던 스웨덴 에릭슨도 이 시장에서만큼은 25.2%로 6%포인트 넘게 격차를 벌렸다.

노키아 장비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혀 왔던 자체 칩 '리프샤크(Reefshark)' 개발이 생각보다 지연된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장비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장비에 들어갈 칩을 생산하거나 자일링스 같은 FPGA(프로그램이 가능한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칩을 사서 용도에 맞게 회로를 그리는데, 노키아는 자체 칩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리프샤크는 단일 칩만으로도 전체 컴퓨터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데다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전력을 낮출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류영호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자체 칩 개발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만, 대량생산이 가능한 수준이 되면 가격이 떨어져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노키아는 자체 칩 비중을 지난해 10%에서 올해 35%, 내년 75%로 끌어올리려는 목표인 만큼 올해 고비를 넘기면 내년쯤 본격적으로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키아는 이번 인텔, 마벨 등과의 협력을 통해 리프샤크를 채용한 장비를 많이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 제2의 위기? 기회?

일각에서는 노키아가 '제2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피처폰 전 세계 1위였던 노키아가 스마트폰으로의 변화 흐름을 읽지 못하고 몰락했던 것처럼 통신장비 회사로서의 현재 입지도 위태롭다는 것이다.

그래픽=이민경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부를 매각한 자금 등으로 2015년 프랑스 통신장비 업체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합병, 단숨에 글로벌 통신장비업체 2위로 변신했다. 알카텔루슨트는 인터넷프로토콜(IP), 라우터 등 유선통신 장비 분야에, 노키아는 이동통신 분야에 각각 강점이 있었다. 현재 이처럼 종합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경쟁사 중 노키아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런 거대회사 간 합병, 융합 과정이 되레 노키아가 5G 시장에서 빠르게 치고나가는 걸 가로 막았다는 지적이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합병 이후 노키아가 내부 정리를 하느라 본 사업에 집중 못 하면서 개발이 늦어지고 경쟁력도 떨어져 계약을 많이 못 따는 악순환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말 기준 노키아의 5G 계약 건수는 68건으로 화웨이(91건)나 에릭슨(81건)에 못 미친다. 이런 수익성 악화 기조에 따라 최근 5년간 영업이익 흐름도 적자·흑자를 반복하는 양상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노키아의 터닝 포인트를 올해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회사에서 25년간 근무한 '노키아맨' 수리 CEO를 외부인으로 교체하고, 리프샤크 개발을 외부업체와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빠르게 체질 개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키아코리아 고위 관계자는 "최근 노키아는 5G 유선망 시장에서 시스코를 처음으로 앞지르는 등 성과를 내고 있어 앞으로 무선 시장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5G 원년인 올해 '리프샤크'를 적용한 제품으로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