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동결 일주일 만에 상황 급변…인하 가능성 열어둬
금융불안·시장 과도한 기대감 의식 신중한 태도 유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4일 "향후 통화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미 연방준비제도(Fed) 금리인하 등 정책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금리를 0.50%포인트(P) 긴급 인하하자 한은도 인하 행렬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써 한은이 오는 4월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통화정책 만으로는 한계와 부작용이 있는 만큼 정부 정책과의 공조를 강조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시장에서는 임시 금통위를 개최해 긴급 금리인하까지 기대했던 만큼 메시지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다소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미 연준의 금리인하 대응 긴급 간부회의를 마친 후 이같이 밝혔다. 연준이 전날(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1.00~1.25%로 0.50%P 긴급 인하한 데 대한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일단 상황이 급변한 만큼 금리인하 가능성에는 문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주 후반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기상황에 대한 우려가 확대됐다"며 "미 연준의 조치로 미국의 정책금리(1.0~1.25%)가 국내 기준금리(1.25%)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했다. 한·미 기준금리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역전폭이 1.00%P까지 벌어졌지만 이날 연준의 결정으로 격차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일주일 전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이미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수준인 1.25%로 내려와 있고, 금리인하가 집값을 자극해 가계부채가 불어나는 부작용을 우려한 것이다.

이 총재는"2월 금통위에서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비·생산활동 위축은 기본적으로 보건·안전 위험에 기인한 것이므로, 금리 인하보다는 선별적인 미시적 정책수단을 우선 활용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봤다"며 2월 금리동결의 배경을 다시 한 번 짚었다. 당시 금통위는 금리를 동결하는 대신 저금리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기존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5조원 증액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이어 "통화정책만으로 코로나19의 파급영향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정부정책과의 조화를 고려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발언은 정부가 11조원대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고 오는 17일 국회 통과를 목표로 두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발언을 두고 금리인하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하면서도 다소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당초 이날 오전 이 총재가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 메시지를 낼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장에서는 ‘임시 금통위’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됐다. 한은이 3월 중 임시로 금통위 회의를 열어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을 예상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원론적인 수준의 메시지를 낸 것도 이같은 기대감을 의식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기대했던 수준에 비하면 원론적이고 교과서적인 수준의 메시지"라며 "일단 인하로 문을 열어둔 것으로 봐야 하는데 직전 금통위에서 동결을 결정했던 만큼 당황한 기색도 보인다"고 했다.

한 증권사의 채권전문 연구원은 "시장의 기대감이 너무 쏠리니 오히려 더 원론적으로 입장을 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일단 4월 인하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