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교육이 펴낸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는 신용카드를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 교과서는 “신용카드는 꼭 필요한 것 한 두개만 사용하거나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신용을 관리하는 좋은 습관”이라고 했다. 또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충동구매’를 할 수 있다고 여러차례 경고한다.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신용을 관리하는 좋은 습관’이라는 말은 엄밀히 따지면 사실이 아니다. 적정한 금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연체 없이 상환하면 신용등급이 오히려 올라간다. 연체가 없다는 것은 카드사가 고객을 그만큼 신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좋은 신용도를 유지하며 활발한 금융 거래를 해야 좋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를 한도 내에서 쓰고 상환을 잘하면 체크카드보다 신용등급에 유리하다는 것이 금융권에선 상식이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경제·금융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 교과서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조선비즈가 일선 고등학교에서 채택된 경제교과서 5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예·적금은 안전하고 신용카드나 주식 투자는 위험한 금융상품이라고 서술했다. 지난해 개정된 교과서에 4~5년 전의 오래된 자료가 인용되거나 시행되지 않은 정책을 시행된 것처럼 실은 교과서도 있었다.

비상교육의 경제 교과서는 ‘금융위원회는 2018년 하반기부터 개인 신용 평가 체계를 현행 1~10등급으로 구분되는 '등급제'에서 '점수제'로 바꾸기로 했다’고 돼 있는데, 이 제도는 올해부터 시행한다. 책은 또 ‘이자는 빌린 돈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고 서술하고 있다. 많은 돈을 빌리면 많은 이자를 내는 것은 맞지만, 이자는 신용등급, 담보, 대출 기간, 가산금리 등의 요소가 결합돼 결정되는 구조여서 정확한 표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 중인 경제교과서 5종. 왼쪽부터 지학사, 비상, 씨마스, 천재교육, 미래엔의 경제교과서.

지학사 경제 교과서는 교육의 상당 부분을 교사에게 위임하고 있다. ‘신용관리’ 단락에서는 신용등급 체계에 대한 설명이 없고 단순히 ‘2030세대의 신용 관리가 중요하다’고만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신용등급을 유지하려면 어떤 경제생활 습관을 가져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대체한다. 교사의 역량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달라지거나, 아예 설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예금, 주식, 채권, 펀드, 보험, 연금 등 금융상품을 간단히 설명만 하고, 구체적인 교육은 협동학습을 통해 공부하도록 했다. 역시 교사의 역량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천재교육 경제 교과서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신용카드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이 책은 ‘쇼퍼홀릭’이라는 헐리우드 영화를 2페이지에 걸쳐 소개하며 “주인공이 명품을 좋아해 마음에 드는 물건이 보이면 어느새 신용카드를 꺼내든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는 당장 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신용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이 때문에 충동구매에 빠져 자신의 상환능력 이상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교과서는 또 과제로 ‘영화속 주인공이 체크카드를 사용했다면 물건을 한꺼번에 살 수 있었을지 예측해 보자’, ‘신용카드 사용에 관한 공익광고를 모둠별로 만들어 보자’ 등 계속 신용카드의 부정적인 면을 학생들에게 각인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미국은 신용도가 낮은 고객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주지 않거나, 발급을 해줘도 한도가 굉장히 낮다”며 “영화에서 직장이 없는 주인공이 신용카드로 명품을 계속 구매하는데, 미국은 물론 한국의 현실과도 맞지 않다. 고등학생의 교육 교재로 사용하는게 적절한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씨마스 경제교과서의 경우 예금은 안전하고 증권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금융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증권 관련 상품 중에는 원금 손실 위험이 없는 상품도 있다. 주식시장은 금융시장의 한 축을 맡고 있는데, 교과서는 주로 부정적인 내용만 다루고 있다.

천재교육의 경제교과서는 신용카드의 부정적인 면을 계속 강조하며 쇼핑 중독에 걸린 주인공이 막대한 카드빚을 진다는 내용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미래엔 교과서는 올해 개정판이 나왔음에도 통계나 인용한 언론 기사 대부분이 2014~2016년 자료였다. 청년 실업 문제를 설명하는 단락에서는 2016년 2월 통계청 자료를 인용했다. 고용동향은 통계청이 매달 발표한다. 한국과 일본의 물가 상승률을 비교하는 단락에서는 2013년 언론 기사를 인용했다. 책은 “최근 저물가가 경기 회복의 복병으로 떠올랐다”고 서술하면서도 한국과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2007~2012년의 자료를 썼다.

같은 문제를 놓고 교과서마다 서술이 다른 경우도 있다. 미래엔 교과서는 주식에 대해 ‘기업이 이익이 나지 않으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펀드 역시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책임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적었다. 다른 교과서도 주식이나 펀드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반대로 천재교육은 ‘주식, 기업, 경제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모의 주식 투자를 해보라는 과제를 내주고 있다.

가계부채의 경우 지학사 교과서는 “현재의 소득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을지 판단해 적정한 부채 규모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적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부채가 발생하면 빌린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부담해야 하므로 부채를 발생시키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미래엔은 “소비나 투자를 하기 위한 돈이 부족할 때 부채를 이용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어떤 교과서로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부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 현장에서 실질적인 금융교육이 이뤄지려면 학생들이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금융상품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금융상품에 가입해보고 주식 투자도 해보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재학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교육실장은 “강의식 경제교육은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수업 방식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학생이 스스로 해결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