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서 비롯된 어린이·청소년·청년 조직,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동일 양상
생활·사고 '정치화'… '조국과 민족'에 대한 감성과 '이념'에 대한 이성을 포괄

중국이나 북한의 어린이들이 붉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오른손을 높이 올려 경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알고보면 이것은 소련의 어린이 조직 ‘피오네르(Пионер∙파이오니어,선봉,개척)’를 따라한 것이다. 소련의 피오네르는 ‘붉은(Красный) 수건(Галстук)’을 목에 두르고 오른손을 높이 올릴 때 ‘항상(Всегда) 준비(Готов)’라고 외쳤다. 중국 어린이들은 ‘붉은 목수건(红领巾∙홍령건)’을 두르고 ‘항상(时刻∙시각) 준비(准备∙준비) 하고있음(着∙착)’을 외친다. 북한 어린이들도 ‘붉은 넥타이’를 목에 두르고 ‘항상 준비'를 외친다.

이렇게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권 국가 어린이 조직의 본이 된 소련의 피오네르는 소련이 건국한 1922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피오네르의 이름은 ‘스파르타크 소년 선봉대(Юные пионеры имени Спартака)’였는데, 몇년 뒤에 ‘전연방 레닌 선봉대(Всесоюзная пионерская организация имени В. И. Ленина)’로 바뀌었다. 피오네르는 그들보다 더 나이많은 형들의 조직인 ‘청년 공산주의자 동맹’ 즉 콤소몰의 산하조직으로 되어 있고 콤소몰의 지도를 받는다. 피오네르를 10세와 11세의 저연령반, 11세와 12세의 중연령반, 그리고 13세부터 14세의 고연령반으로 나누어 관리했다.

소련 피오네르의 붉은 수건은 삼각형 모양인데, 삼각은 각각 소련공산당, 콤소몰, 피오네르를 상징한다. 피오네르는 어린이들의 일상을 소련 공산당의 ‘정치화’ 교육에 친숙하도록 만들었으며, 군대의 전통을 강하게 띠고 있다. 러시아 혁명 당시의 소년병들은 ‘소년 공산주의자’같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소년병 조직들이 나중에 피오네르의 원형이 되었다. 피오네르의 조직 기초단위 이름이 ‘분대’인 것을 보아도 군대의 문화를 알 수 있다.

피오네르보다 더 어린 아이들의 조직도 소련공산당은 만들었다. 7세부터 9세까지의 조직 이름은 ‘10월의 어린이(Октябрёнок∙악쨔브료낙)’이다. 볼셰비키 10월혁명을 기념하여 ‘10월(Октябрь∙악쨔브리)’과 ‘아기∙어린이(Ребёнок∙리뵤낙)’를 합성한 말이다.

소련 소년 선봉대 ‘피오네르(Пионер∙파이오니어,선봉,개척)’를 묘사한 그림. 가운데 휘장에는 레닌의 얼굴과 ‘항상(Всегда) 준비(Готов)!’라는 구호가 있다.

중국판 피오네르는 ‘중국 소년 선봉대(中国少年先锋队)’이고 중국 사람들은 줄여서 소선대(少先队)라고 부른다. 영문 공식 명칭은 ‘차이나 영 파이오니어’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에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소련의 피오네르가 그들보다 더 나이가 많은 ‘청년 공산주의자 동맹’ 즉 콤소몰 산하로 되어있고 콤소몰의 지도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소년선봉대는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조직인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즉 공청단 산하로 되어 있고 공청단의 지도를 받는다. 참고로 북한에는 소련의 피오네르나 중국의 소년선봉대와 같은 맥락의 ‘조선 소년단’이 있다.

중국 소년선봉대에는 소련 ‘피오네르’와 ‘10월의 어린이’ 조직의 대상연령을 합친 6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들어간다. 소련의 피오네르가 군대 문화의 성격이 강하다고 했는데, 중국의 소년선봉대도 피오네르처럼 소대, 중대, 대대의 조직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 소년선봉대 소대 간부의 팔뚝에는 막대기 한개의 계급장이, 중대 간부의 팔뚝에는 막대기 두개의 계급장이, 대대 간부의 팔뚝에는 막대기 세개의 계급장이 있다.

소련에서 피오네르보다 더 나이가 많은 청소년∙청년들의 조직은 ‘청년 공산주의자 동맹’, 즉 콤소몰(КомСоМол)이다. 정식 이름인 ‘전연방 레닌 청년 공산주의자 동맹(Всесоюзный Ленинский Коммунистический Союз Молодёжи)’을 축약한 말이 콤소몰이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가담했던 여러 청년 조직들을 모아서 10월혁명 성공 이듬해인 1918년에 콤소몰을 만들었는데, 당시의 이름은 ‘러시아 공산주의자 청년 동맹’이었고 몇년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 역시 소련 공산당이 청년들에게 실시한 ‘정치화’가 목적이고, 이 청년들은 소련공산당의 ‘조수’ 임무를 하면서 동시에 소련공산당 ‘예비 핵심인력’의 자격이 주어졌다.

콤소몰은 15세 이상 20대 후반까지의 청소년∙청년이 대상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해당 나이 청년들의 3분의2 가량이 콤소몰을 거치게 되었다. 콤소몰 역시 군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고, 2차세계대전 당시 치열했던 독일과의 전투에 참전한 콤소몰 출신 수십만명은 소련군의 정예 노릇을 했다. 소련 시절을 통틀어 콤소몰 동맹원이 아니라면 사실상 진학이나 이후 직업선택 등에서 차별을 받았으며 콤소몰 출신은 소련공산당의 곳곳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이후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콤소몰 조직도 사라지게 되었다.

‘중국 소년 선봉대(中国少年先锋队)’를 소재로 한 인형. 왼쪽 팔뚝에 막대기 세개의 계급장이 있으므로 대대장 간부이다.

중국판 콤소몰은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中国共产主义青年团)’이고 줄여서 공청단이라고 부른다. 소련의 콤소몰이 1918년 만들어진 것을 보고 1920년 상하이의 중국공산당 산하에 청년들을 모아 ‘상하이 사회주의 청년단’을 조직했고 1922년에 정식 출범했다. 1928년에는 대표들이 모스크바에 모였고 이후로도 사회주의 국가간 청년 교류를 이어갔다.

공청단은 중국공산당의 이념을 충실히 학습하며 실천하고, 역으로 중국공산당은 주요 사업에 공청단을 앞에 내세워 활용한다. 중국 공청단 역시 소련 콤소몰처럼 공산당의 ‘조수’ 임무를 하면서 동시에 중국공산당 ‘예비 핵심인력’의 자격이 주어지는데, 중국공산당에서는 이것을 ‘신선한 피의 수혈’이라고 불렀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공청단 출신은 주요 정치세력 중 하나로 대접받는다.

공청단 조직은 서기처를 중심으로 선전부, 농촌청년공작부, 통일전선부, 국제연락부, 소년부, 학교부 등이 있다. 공청단 산하에 소년선봉대가 있고, 공청단원 중에서 ‘소년선봉대’와 ‘중화 전국학생 연합회’의 두 조직을 지도하는 임무를 띠는 ‘지도선배(辅导)’를 선발한다. 개혁개방 이후에도 공청단에게는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향촌∙지역간 발전, 과학기술 발전, 성실한 노동 등에 앞장서 조국의 경제사회발전에 계속 기여하라’는 목표가 주어졌다. 21세기에 들어와 주목할 점은 공청단과 일본 청년들간의 국가차원 교류가 잦아졌다는 것이다. 참고로 북한에서 소련 콤소몰이나 중국 공청단에 해당하는 조직은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이다.

중국 소년선봉대나 공청단의 역사를 논할 때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紅衛兵)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다시피 문화혁명은 모택동이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으로 불안한 자신의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정적들을 타도하고 전국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극좌 대중운동이다. 당시 어린이∙청년들 중에서 폭력적, 급진적으로 몰려 다니며 모택동의 반대세력을 ‘반혁명’ 세력으로 몰아가는데 앞장세워진 집단이 바로 자칭 타칭 홍위병이다. 일부 홍위병들 중에 소년선봉대나 공청단에 소속되었던 어린이∙청년도 있었겠으나, 문혁기간중 소년선봉대와 공청단 조직은 홍위병의 위세에 눌려 활동을 하지 못했고 문화혁명이 어느정도 막을 내리면서 소년선봉대와 공청단은 다시 재건되었다.

중국판 콤소몰은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이고 줄여서 공청단이라고 부른다. 공청단 휘장 위의 붉은색 깃발과 황금색 별은 혁명의 승리를, 아래 원 왼쪽의 밀이삭은 농민을, 원 오른쪽의 톱니는 노동자를, 원 내부의 떠오르는 태양과 햇살은 공산당의 돌봄을 상징한다. 중국공청단(中国共青团)은 모택동의 글씨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소련을 연원으로 한 어린이, 청소년, 청년 조직은 중국, 북한등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유사한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이들 조직은 해당 연령의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의 생활과 사고를 ‘정치화’하였다. 이들이 가진 집단의식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감성과 ‘이념’에 대한 이성을 포괄한다. 소련의 어린이∙청소년∙청년 조직을 서유럽에서 태동한 ‘보이 스카우트’와 비교해 본다면 나타난 시기는 보이스카우트가 더 빠르고 둘의 성격은 매우 상이하며, 소련의 어린이∙청소년∙청년 조직을 나치 독일의 ‘독일 소년단’이나 ‘히틀러 청소년단(유겐트)’과 비교해 본다면 나타난 시기는 독일이 더 늦고 소련과 독일의 모습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하겠다.

중국과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사회주의를 같이한 역사 등을 공유하는 특수한 관계이다. 위에서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중국의 어린이∙청소년∙청년 조직 이야기를 통해 두나라의 공통점을 알아 보았다. 우리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관심과 교류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시장경제를 운위하는 러시아, 중국과 교역하며 상호 이익을 추구해 오고 있다. 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지역적으로도 붙어 있고 소비자의 규모도 큰 두 나라와의 경제적 거래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현대의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교역이라는 두가지 테마만으로도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러시아 시장을 포함한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힐 동인이 된다. 더구나 동북아의 정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될수록 육로로 연결된 경제권은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광의의 중국어권 시장과 러시아어권 시장도 함께 묶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GM∙CJ의 국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