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정부 "1000명 이상 모이는 행사 금지"에 모터쇼 취소
자동차 8사 생산 1월에만 8.8% 감소… 2월 판매 -92%
공급망 흔들리며 생산 중단 잇따라…전기차 등 신차 판매 위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럽 등으로 확산되면서 자동차 업계가 전방위적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각)에는 유럽 3대 모터쇼 중 하나인 스위스 제네바모터쇼가 취소됐다. 한국 뿐만 아니라 유럽 자동차 회사들도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와 생산량도 감소 일로다. 올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전기차 판매가 당초 예상보다 대폭 줄어드는 등 신차 판매가 감소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제네바모터쇼가 2일 사전공개 행사를 앞두고 취소되자 르노 직원들이 전시관에 준비해놓았던 신형 모델 차량들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4월 뉴욕·6월 디트로이트 모터쇼도 취소되나

제네바모터쇼 사무국은 지난달 28일 "2일 사전 언론 공개 행사가 예정되어있던 제90회 제네바국제모터쇼를 최소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는 스위스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스위스 정부가 1000명 이상이 모이는 집회 및 행사를 15일까지 금지하기로 하면서 결정한 것이다. 마우리치 투레티니 제네바모터쇼 회장은 "불가항력인 일 때문에 모터쇼 참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회사들이 손실을 입게 됐다"며 "하지만 모든 참가자들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네바 모터쇼는 세계적인 모터쇼다. 모터쇼가 열리는 제네바 팔렉스포 전시장에는 BMW,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르노 등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이는 새 모델을 전시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모터쇼가 취소되면서 유럽 고급차 브랜드 등 자동차 회사들은 신차 출시 계획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미 4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중국 최대 모터쇼 베이징모터쇼는 무기한 연기됐다. 자동차 업계는 4월 10일 열리는 뉴욕 모터쇼와 6월 7일 열리는 디트로이트 모터쇼도 향후 개최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로드 앨버츠 디트로이트모터쇼 집행이사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동북부 하얼빈 소재 자동차 엔진 회사인 하얼빈동안차 공장에서 근로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엔진을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스페인 부품 공장 가동 중단

유럽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멈추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코도뇨에 공장이 있는 자동차 전장부품 회사 MTA는 이탈리아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자 가동을 멈췄다. 이 회사는 지난달 중국 상하이 소재 공장을 중단했다. 자동차 업계는 MTA 등 이탈리아 북부 소재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잇따라 조업을 중단하면서 피아트 뿐만 아니라 르노, BMW, 푸조, 재규어랜드로버 등 승용차 회사와 이베코, CNH 등 상용차 회사들이 연쇄 가동 중단에 들어갈 위험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일본 부품회사 덴소와 후지쓰의 스페인 공장은 16일부터 자동차 오디오 부품 조립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할 계획이다. 중국산 부품 부족 때문이다.

유지웅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유럽산 전장 핵심부품 조달이 끊기면 와이어링 하니스 공급중단 보다 충격이 훨씬 클 수 있다"며 "현대·기아차 유럽 공장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한다"고 말했다.

◇신차 판매 40% 서 나는 폴크스바겐 직격탄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매출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토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 8개사의 1월 생산은 전년동기 대비 8.8% 감소한 220만4000대였다. 특히 이들 회사들의 중국 공장 생산은 전년 대비 20% 줄어들었다. 업체별로 보면 혼다가 19.1%, 닛산이 18.7%, 토요타가 6.1%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생산량이 줄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중국의 자동차 판매는 2월 1일부터 16일까지 4900대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6만대가 팔렸었다. 무려 92%가 줄어든 것이다. 중국 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머물러 있었고 자동차 딜러의 활동도 없었다"며 자동차 판매가 12분의 1로 쪼그라든 이유를 설명했다.

중국 시장 위축은 중국 비중이 40%를 차지하는 독일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회사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독일 자동차산업연구센터 교수(두이스부르크-에센대·경제학)는 "중국 수요가 줄어들면서 독일 자동차 업계가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폴스크바겐은 지난달 28일 있었던 실적 발표에서 2020년 영업이익률이 6.5~7.5%로 지난해(7.6%)보다 최대 1.1%포인트(p)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자동차 시장이 침체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봤다. 또 매출액 증가율은 4%로 전년(7%)보다 3%p 가량 내려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파주시의 기아자동차 대리점에서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을 위해 매장 내부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 부품업체 추가 구조조정 불가피"

올해 신차 판매가 줄어들면서, 전기차 시장 확대가 주춤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올해 자동차 회사들은 EU(유럽연합)의 환경규제 등에 대응해 전기차 모델을 대거 출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신차 판매가 주춤하면서 이들 전기차 모델의 실적도 좋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현대기아차 등 국내 회사들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자동차 판매가 올해 9000만대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보이고, 이렇게 되면 현대기아차도 경쟁력 있는 신차가 줄줄이 나오는 '골든 사이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5년 이상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부품업계는 추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중소기업은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조금 개선돼서 2%대인데 올해는 마이너스인 경우가 수두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