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맛집’으로, ‘부동산’은 ‘맛동산’으로 바뀌었다. ‘지역 임장(현장방문)’은 ‘기행’으로 바뀌었고 ‘재개발·재건축 정보방’은 ‘생활정보·인테리어 공유방’이 됐다. 온라인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가 모여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오픈채팅방과 커뮤니티에서 ‘부동산을 부동산이라 부르지 못하는’ 웃지 못할 기(奇)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 유관부처 특별사법경찰 등으로 구성된 부동산 단속반이 지난 24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자, 온라인 오픈채팅방과 커뮤니티들이 ‘부동산 간판’을 속속 내리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를 주축으로 검·경과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으로 구성된 ‘부동산 불법행위 대응반’은 업다운 계약, 청약통장 불법거래 등 기존 단속 대상과 함께 온라인 공간에서의 비등록 중개행위나 표시광고법 위반도 집중 단속할 예정이다.

특히 유튜브와 인터넷 카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등도 표적이 됐다. 그러자 누구나 참여해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공유의 장(場)이 옹벽을 치고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운영방식도 개방 형태에서 폐쇄·제한형태로 바꾸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됐던 개방형 공간에 비밀번호가 생겼다. 또 아파트 주민임을, 조합원임을 인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가 하면 전화번호를 제출해 문자메시지로 추가 확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은어도 생겨났다. 한 대화방에 오른 ‘주요용어 치환 안내 공지’에 따르면 매물은 ‘재료’로, 전매제한은 ‘유통기한’으로 바꿔 부른다. ‘뿌셔뿌셔’는 재개발을 뜻하고 ‘깡시장’은 복덕방을 의미했다.

아파트 브랜드에도 암호명이 생겼다. ‘래미안’은 ‘에버랜드’, ‘자이’는 ‘지에스칼텍스’, ‘이편한세상’은 ‘이편한치과’, ‘아이파크’는 ‘앙팡’, ‘SK뷰’는 ‘와이번스’, ‘중흥S클래스’는 ‘벤츠S클’, ‘쌍용플래티넘’은 ‘쌍화차’라고 부르는 식이다.

수도권 한 아파트 단지 견본주택에 몰린 청약대기자들.

채팅방을 개설한 소위 방장들은 시세는 물론 아파트단지 실명 언급 자체를 금지하며 입단속에 나섰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한 이용자의 물음에 개설자는 "부동산과 관련된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톡방이 검열대상에 올라온 것 같다"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단속반을 만든 취지는 신종 부동산 시장 교란행위를 잡기 위해서다. 최근 유튜브나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에서 집값 급등 지역의 개발 호재를 소개하며 무등록으로 매물을 중개하거나 탈세 기법 등을 강의하는 행위가 성행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사실 자체검열에 들어간 채팅방들의 과거 대화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단한 투자정보나 불법이 의심되는 담합행위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경우도 많다.

1500명이 있는 A오픈채팅방에 참여해보니 30대가 털어놓은 내집 마련 고민에 50·60대가 경험으로 체득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행정적 절차에 대해 문의하고 불편을 토로하는 것 같은 평범한 대화도 많았다. 가짜뉴스나 정치 편향 글, 연예인에 관한 가십거리가 언급되면 삭제조치 되고 해당 글 게시자를 탈퇴시키는 등 자정기능이 작동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채팅방까지도 정부의 엄포에 크게 반응하는 모양새였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부동산을 부동산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상이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 결과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 정부가 ‘부동산’을 전쟁 대상으로 선포하며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니 정상 대화조차도 숨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온라인 상의 담합에 대한 기준이 모호할 뿐더러 불법성 판단도 쉽지않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해석하기 나름 아니냐는 생각에 사람들이 책잡힐까 과잉방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 서너명이 카카오톡 대화방에 모여 시세를 얘기하는 것도 담합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소위 불법 떴다방 단속도 단속 시점에 일시적으로 사라질 뿐이었다"면서 "이런 단속 효과는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에서 의사소통을 위축시킨다고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불법행위가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며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