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탈(脫)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대표 원전 기업인 두산중공업이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연말 대규모 임원 감축을 비롯해 사업 조정, 유급 휴직, 계열사 전출 등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펼쳐왔지만, 경영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자 결국 '45세 이상 명예퇴직'이라는 초고강도 카드까지 꺼낸 것이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명예퇴직자 1000명 이상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탈원전 정책이 낳은 한국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의 신호탄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탈원전으로 2030년까지 원전 산업 인력 약 1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정부 용역 보고서(2018년·딜로이트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18일 사내 공지를 통해 만 45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20일부터 2주 동안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 직원 6700명 중 45세 이상 직원은 2600여명(39%)이다.

두산중공업이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 작업에 나서는 것은 핵심 수익원이던 원전 사업이 탈원전으로 붕괴됐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2018년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백지화했다. 원전 핵심 설비인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만드는 두산중공업의 원전 1기당 매출이 1조2000억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탈원전으로 매출 7조~8조원이 사라진 것이다. 원전 부문 공장 가동률은 곤두박질쳐 2017년까지 100% 가동하던 공장이 올해는 60%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를 끝으로 원전 일감이 끊기는 수주 절벽이 현실화하면서 공장 가동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회사 경영 상황은 악화됐다. 두산중공업은 2018년 4200억원, 지난해엔 1000억원의 당기순손실(연결기준)을 냈다. 그나마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등 자회사들이 좋은 실적을 내준 덕분에 손실 규모가 줄었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다. 두산중공업 단독 기준 영업이익 등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매출은 2012년 7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3조7000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지난 연말 대대적인 자구 노력을 벌였다. 전체 임원 65명 중 13명에게 퇴사를 통보해, 임원 규모를 3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였다. 사업 조정, 유급 휴직, 계열사 전출 등도 단행했다. 두산중공업 측은 "수년간 세계 발전 시장 침체와 국내시장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변화 추세에 맞춰 가스터빈으로의 사업 전환 등을 꾀했지만 불가피하게 명예퇴직을 실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의 문제는 한국 원전 산업 전체에 큰 파장을 미친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대기업인 두산중공업의 희망퇴직을 기점으로, 마치 댐이 무너지듯 협력 업체 수백 곳이 감원과 줄도산하는 사태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대통령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원전 산업을 일으켜 세운 핵심 인력과 그 가족들이 무고하게 고통을 받게 됐다"고 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끊긴 원전 수출도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이번 희망퇴직으로 원전 엔지니어들부터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라며 "원자로 등 원전 핵심 장비를 적기에 납품하는 게 우리 원전 산업의 경쟁력이었는데, 중추 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가면 앞으로 해외 원전 추가 수주는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두산중공업에서 빠져나간 베테랑 원전 기술자들이 중국 등 해외로 이직할 경우, 기술 유출 우려도 높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무리한 탈원전 정책을 되돌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