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인 재지정 하향 제도가 시행되면서 ‘감사인 직권지정 기업’이 비용 부담 등의 문제로 대형 회계법인 대신 중견·중소형 회계법인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견·중소 회계법인은 상대적으로 부실한 기업을 맡게 돼 부담이 커졌다며 불만이다. 감사인 직권지정 기업은 금융당국이 감사인(회계법인)을 강제로 지정하는 기업을 말한다.

18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하향 재지정 제도가 시행된 후 직권지정 대상 기업들은 ‘빅4(삼일·삼정·한영·안진)’로 불리는 대형 회계법인 대신 중견·중소형 회계법인으로 몰리고 있다. 빅4를 제외한 나머지 회계법인이 지정받은 기업은 2018년 357개사에서 지난해 770개사로 115.7% 늘었다. 또 지난해 말 당국으로부터 감사인 지정을 받은 직권지정 기업 635곳 중 400여곳이 중견회계법인으로 몰렸다.

감사인 직권 지정제는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기업에 감사인 선임을 요구하는 제도다. 6년간 감사인을 자유수임한 상장사에 3년간 감사인을 지정하는 주기적 지정제와 달리 회계기준을 위반해 제재를 받았거나 기한 내 감사인을 선임하지 못한 기업에 적용된다.

회계법인은 자산총액과 공인회계사 수 등에 따라 ‘가~마’ 5군으로 나뉜다. 빅4는 ‘가’군에 속하고 나머지 중견·중소형 회계법인은 ‘나’~‘마’군에 속한다. 금융당국은 당초 기업이 상위등급 감사인군으로 요청할 때만 재지정을 허용했으나 주기적 지정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업 부담을 완화해준다는 취지로 지난해 말 하향 재지정을 열어줬다.

감사인 직권 지정 기업들이 저등급 회계법인을 고르는 이유는 비용이 적고 상대적으로 덜 깐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을 맡게된 중소·중견 회계법인은 감사 위험이 커졌다고 우려한다. 만약 수임한 기업의 상황이 안 좋게 되면 이들 회계법인은 감사비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기업 불찰로 ‘관리’가 필요해 직권지정 기업이 된 것인데 하향 조정까지 해주면서 편의를 봐줘야 하냐는 말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한 중소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직권지정 기업이 중소·중견 회계법인에서 감사를 받으면 결과가 더 좋게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감사 할 기업 수가 늘어나는 부담도 있지만 아무래도 직권지정 감사는 지정 사유에 따라서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회계업계에서는 "중견 회계법인 중에 이번에 100곳 넘게 수임한 데도 있는데, 품질관리나 인력 등 감사 역량이 충분한지 의문"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직권지정 받은 기업까지 하향 지정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이 나오는걸 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이런 부문을 논의할 예정이고 여러 대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