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과학자들이 박테리아 같은 단순한 생물에서 인간과 동식물 등 복잡한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간 단계에 있는 생물을 처음으로 실험실에서 배양했다. 그동안 유전자 연구로만 중간 단계에 있는 생물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처음으로 실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노부 마사오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2006년 태평양의 2.5㎞ 아래 진흙에서 발견한 미생물을 12년 연구 끝에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을 따 '프로메테오아케움'이란 이름을 붙였다. '프로메테우스 고세균'(古細菌, Archaea)이라는 의미다.

생물은 크게 원핵생물(原核生物)과 진핵생물(眞核生物)로 나뉜다. 원핵생물은 핵이 없다는 뜻이다. 박테리아와 고세균 같은 단세포생물이 원핵생물이다. 진핵생물은 세포에 유전물질인 DNA가 들어 있는 핵이 따로 있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과 식물이 여기에 속한다. 고세균은 같은 원핵생물이지만 구성 물질이 다르고 진핵생물과 일부 유사한 점이 있어 세균과 따로 분류한다.

노부 박사는 심해처럼 메탄이 많은 환경에서 먹이를 달리하며 키운 끝에 배양에 성공했다. 배양이 까다로운 만큼 성장 속도도 느렸다. 대장균은 보통 20분마다 몸이 둘로 나뉘며 증식하는데, 프로메테우스 고세균은 한 번 분열하는 데 25일이나 걸렸다. 특히 DNA를 조사했더니 고세균과 진핵생물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실물로 확인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고세균이 진핵생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스웨덴 웁살라대 연구진이 대서양의 바다 밑에서 퍼 올린 진흙에서 그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심해 미생물은 실험실에서 배양이 되지 않았다. 대신 과학자들은 진흙에 있는 DNA를 한꺼번에 분석했다. DNA는 고세균과 진핵생물의 유전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었다. 스웨덴 연구진은 미지의 미생물을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을 따서 '로키 고세균'이라고 불렀다. 마블 영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 토르의 동생이 바로 로키다. 이후 토르, 오딘, 헤임달 등 다른 북유럽 신들의 이름을 딴 고세균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과학자들은 이들을 합쳐 북유럽 신들이 사는 세계의 이름을 따 '아스가르드 고세균'이라고 부른다. 프로메테우스 고세균은 처음으로 실물이 확인된 아스가르드 고세균이다.

과학자들은 원핵생물이 서로 결합하면서 진핵생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미토콘드리아가 대표적인 증거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 소기관인데 세포핵과 별도로 DNA를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 한 세균이 다른 세균의 몸 안에 들어가 공생(共生)하다가 소기관으로 정착했다고 추정한다. 일본 연구진이 배양한 프로메테우스 고세균은 이 이론을 뒷받침했다. 고세균은 자라면서 촉수를 뻗어 주변에 있는 세균들을 감쌌다. 고세균과 세균은 이 상태로 맞붙어 영양분을 주고받았다. 연구진은 처음에는 서로 달라붙어 공생하다가 이내 고세균의 몸 안으로 다른 세균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조장천 인하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아스가르드 고세균의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유전자 전체를 얻은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도 있다. 프로메테우스 고세균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만 자란다. 반면 미토콘드리아는 산소가 있어야 한다.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고세균이 산소가 있는 환경으로 이동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조 교수는 "진핵생물과 더 가까운 헤임달 고세균까지 배양이 되면 진화에 대한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