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홈쇼핑 업계에 "마스크 판매 방송을 확대하라"고 요청한 다음 날, 현대홈쇼핑이 새벽부터 마스크 200세트(60장 들이)를 판매하려다 1분 만에 판매가 중단되고, 서버가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소비자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밤새워 대기하다 주문하려 했지만 큰 불편만 겪었다.
서울 청담동에 사는 40대 워킹맘 이모씨는 7일 오전 3시 30분부터 TV 앞에서 현대홈쇼핑 채널을 켜놓고 대기했다. 인터넷 카페들에 이날 오전 4시부터 9분간 '현대홈쇼핑에서 동국제약 KF94 마스크(60장)를 3만9900원에 판다'는 소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마스크 한 장당 665원으로, 시중에서 파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 이씨는 이날 4시 정각에 맞춰 모바일 앱 주문 버튼을 눌렀지만, 휴대폰 화면이 먹통이 돼 구입하지 못했다. 1분 뒤 현대홈쇼핑 앱과 홈페이지에는 '주문 불가' 표시가 떴다.
이날 현대홈쇼핑은 주문 테스트를 위해 방송 30분 전부터 온라인 결제가 가능하게 했다. 그러자 4분 만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결제창이 열렸다'는 정보가 퍼졌고, 이를 본 쇼핑객이 순식간에 몰리면서 200세트가 방송 시작 전에 모두 팔렸다. 이에 홈쇼핑 측은 부랴부랴 30세트를 추가로 구해 오전 4시 방송에서 풀었다. 마스크는 방송 1분 만에 매진됐다. 방문자 급증으로 판매 서버도 마비됐다. 현대홈쇼핑 관계자는 "새벽 방송에서 품절 사태가 빚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테스트 결제창을 빨리 열어뒀다"며 "결제창이 뜨자마자 준비 수량이 다 팔려나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이날 현대홈쇼핑 고객센터와 소셜미디어에는 '홈쇼핑 사업자 재승인받으려고 새벽 4시에 마스크로 소비자 우롱하느냐' '소비자원에 신고하겠다'는 글이 쏟아졌다. 방송 전날인 6일 오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현대홈쇼핑과 CJENM오쇼핑·롯데홈쇼핑·NS홈쇼핑 등 홈쇼핑 관계자들을 한국TV홈쇼핑협회 회의실로 불러 모아 "마스크 판매 방송을 늘리면 향후 홈쇼핑 사업자 재승인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발표한 걸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현대홈쇼핑은 올해 채널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홈쇼핑 측은 "문제가 된 방송은 정부 간담회 전인 지난 3일 편성된 프로그램"이라며 "전국적으로 마스크 사재기·가격인상·품귀 사태가 벌어진 상황에서 제품을 소량이라도 확보해 판매하려다 큰 불편을 끼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지난 6일 과기정통부 호출을 받고 급하게 불려 들어가 마스크 판매 회의를 가졌지만, 정부가 뭘 도와주겠다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며 "팔고 싶어도 팔 물량이 없다"고 했다. 한 티커머스(녹화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마스크는 굳이 홈쇼핑 방송으로 팔지 않고 온라인 쇼핑몰에 내놓기만 해도 금방 팔릴 텐데, 보여주기식 정부 회의에 홈쇼핑이 들러리로 나선 기분"이라고 했다. 비판 여론이 일자 과기정통부는 7일 설명 자료를 내고 "홈쇼핑의 마스크 판매 방송 확대 추진은 업계의 자발적 의사와 적극적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홈쇼핑 재승인 권한을 가진 막강한 과기정통부가 '요청'하면, 홈쇼핑업체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완수해야 하는 '의무'로 여기기 마련"이라고 했다.
마스크 품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뒤늦게 사실상 유통을 통제하는 '긴급수급 조정조치'를 발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7일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마스크 생산 업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생산량·출고량·수출량 등을 매일 신고하도록 할 것"이라며 "관련 업체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불법 거래 차단에 큰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