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에 내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었다."

6일 우리금융 이사회가 DLF(파생결합펀드) 손실 사태와 관련,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문책경고)를 받은 손태승 회장의 연임을 결정하자 금융권에선 이런 반응이 나왔다. 금감원의 감독을 받는 민간 금융회사가 금감원의 결정에 불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금융이 금감원 징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진행할 경우 손 회장의 거취는 법원 판결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한 금융권 인사는 "쥐에게 물렸다고 고양이가 죽지는 않겠지만, 우리금융의 불복만으로도 금감원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말했다.

손태승 회장

6일 우리금융 이사회는 간담회를 열고 "그룹 지배 구조에 관해 기존에 결정된 절차와 일정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올 3월에 임기가 끝나는 손 회장을 연임시키기로 한 작년 말 이사회의 결정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우리금융은 향후 금감원의 중징계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금융 당국의 중징계를 받으면 CEO(최고경영자)가 자진 사퇴했던 불문율이 깨진 것이다.

손 회장과 함께 문책경고를 받은 하나금융 함영주 부회장도 사퇴하지 않고 행정소송으로 맞서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 부회장의 임기는 올해 12월에 끝나는데, 징계를 수용할 경우 내년 초 퇴임하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후임이 될 수 없다. 금감원은 당혹스러우면서도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절차에 따라 소송에 임하겠다"며 "더 엄정한 감독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회장 대안 없고, 중징계는 과잉 처벌"

윤석헌 금감원장

우리금융이 금감원에 반발하고 나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첫째, 손 회장이 물러나면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손 회장이 우리금융의 전신인 우리은행 행장이 된 것은 2017년 12월이다. 금융권 CEO는 통상 임기가 3년인데, 손 회장은 아직 2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내부에서 후계자감을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손 회장이 갑자기 물러날 경우 차기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 등 외부 출신들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외부 인사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관치(官治) 논란까지 일 수 있다"며 "손 회장 연임이 최선은 아니겠지만, 조직 안정을 감안하면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둘째, 금감원의 중징계가 과도했다는 여론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금감원이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내부 통제 기준 미비에 대한 감독 책임을 물어 손 회장을 중징계한 것이 무리한 법 적용이라고 보고 있다. 명시적인 위법행위가 없는데도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기준 미비' 같은 모호한 이유로 경영진을 과잉 처벌했다는 것이다. 감사원도 최근 금감원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징계의 적정성에 대한 감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감원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금융이 DLF와 키코(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 있으면 만기에 미리 정한 환율로 약정액을 팔 수 있게 한 금융파생상품)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의 분쟁 조정 조치를 적극 수용했음에도, 금감원이 징계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 "금융사 감독 더 세게 할 것"

금융권은 일단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금융사 임원은 "징계를 순순히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과거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과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은 금감원의 중징계를 받고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은 사퇴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이사회가 해임 결정을 내리자 소송도 취하했다.

과도한 징계 수준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행정처분에 대해 기업이 불복 청구를 하는 건 헌법상 권리"라며 "금감원이 금융사 수장 존폐를 결정하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공식적으로는 "소송이 걸리면 절차에 따라 차분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오너 없는 금융사 회장의 제왕적 권위를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민간 제재심 위원들도 거의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라며 "금융사 CEO가 이렇게 책임을 거부하면 금감원은 앞으로 금융사 감독을 더 세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