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크게 줄어들면서 인간도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인간이 먹는 식품의 3분의 1이 꿀벌의 꽃가루받이가 있어야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꿀벌을 구할 신무기를 개발했다. 바로 RNA 간섭 현상을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다. 당초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됐다가 최근 꿀벌을 공격하는 기생충과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상용화 연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달 3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표지에 꿀벌 배에 진드기인 바로아 응애가 달라붙어 있는 사진을 실었다. 바로아 응애는 꿀벌의 몸에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나중에 날개를 기형으로 만들어버리는 바이러스까지 퍼뜨린다. 미국 텍사스대의 낸시 모란 교수 연구진은 이날 사이언스에 이 진드기와 바이러스를 RNA로 물리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른바 'RNA 간섭' 현상을 이용해 바로아 응애와 날개 기형 바이러스의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복사해 그에 맞게 단백질을 만든다. 그런데 RNA 중 일부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다른 RNA와 결합해 같이 사멸된다. 그러면 해당 RNA가 복사한 유전자의 기능도 차단된다.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처럼 짧은 RNA 가닥이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RNA 간섭 현상을 밝힌 두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2018년 미 식품의약국(FDA)은 RNA 간섭을 이용한 희소질환 치료 신약을 처음으로 허가했다.

연구진은 꿀벌의 소화기관에 공생(共生)하는 장내세균을 간섭 RNA의 전달자로 택했다. 장내세균의 유전자를 변형해 간섭 RNA를 계속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장내세균은 설탕물에 섞어 꿀벌에게 제공했다. 유전자가 변형된 장내세균은 꿀벌의 소화기관에서 내피세포 안으로 간섭 RNA를 전달했다. 바로아 응애나 바이러스가 꿀벌에 감염되면 이 간섭 RNA가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 기능을 차단하면서 죽음에 이른다. 실험 결과 바로아 응애는 새 장내세균을 먹인 꿀벌에서 일반 꿀벌보다 70%나 더 많이 죽었다. 또 장내세균이 바뀐 꿀벌은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다른 꿀벌보다 36.5% 더 생존했다. 독일 마르틴 루터대의 로버트 팍스톤 교수는 이날 논평 논문에서 "야외에서 장기적으로 효과를 확인해야겠지만 이 방법으로 꿀벌의 가장 심각한 전염병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학자들은 간섭 RNA 치료제가 백신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번 꿀벌에게 간섭 RNA 치료제를 주면 대(代)를 이어 기생충과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꿀벌이 로열젤리를 분비해 애벌레에게 먹일 때 질병을 막는 간섭 RNA도 같이 분비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간섭 RNA는 애벌레의 체액을 통해 몸으로 퍼졌다가 나중에 성충이 되면서 머리의 로열젤리 분비샘으로 이동한다. 로열젤리가 분비되면 간섭 RNA가 다시 다음 세대 애벌레로 전달되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지난해 간섭 RNA가 로열젤리에 있는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단단한 입자가 되는 현상도 확인했다. 이러면 주변 환경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간섭 RNA 백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갔다. 독일 바이엘이 인수한 종자회사 몬샌토는 2011년에 이스라엘 신생 벤처인 비로직스를 인수했다. 비로직스는 RNA 간섭 현상을 이용해 꿀벌 감염을 막는 기술을 개발했다. 몬샌토는 바로아 응애가 꿀벌이 애벌레일 때 주로 감염된다는 점에 착안해 간섭 RNA를 애벌레 먹이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동안 진드기 퇴치에 쓰던 살충제는 꿀벌에게도 해가 많았지만 간섭 RNA는 꿀벌은 건드리지 않고 진드기와 바이러스만 공격한다고 몬샌토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