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로보틱스의 서빙 로봇 ‘페니(Penny)’.

구글 다니면서 부업으로 순두부집을 하다가, 회사 때려치우고 자율주행 서빙(serving) 로봇을 만든 창업자가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3200만달러(약 37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주인공은 201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창업한 베어로보틱스의 하정우(44) 대표.

투자 유치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하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소프트뱅크가 1년 이상 검토한 끝에 투자 결정을 내렸다"며 "경쟁 업체에 비해 기술 수준이 높고, 이미 상용화해 시장 이해도가 높다는 점을 평가해준 것 같다"고 했다. 이번 투자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주도했고 한국의 롯데액셀러레이터, 스마일게이트, DSC인베스트먼트도 참여했다.

베어로보틱스가 만든 로봇의 이름은 '페니(Penny)'. 바퀴 넷 달린 높이 1m가량의 원통형 로봇으로 좁은 식당에서 사람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각 테이블에 정확하게 음식을 갖다준다. 주방에서 완성된 요리와 음료를 로봇의 쟁반에 올려놓고 테이블 번호만 입력하면 최단 경로를 찾아 안전하게 운반한다. 하 대표는 "라이다와 센서를 통해 바닥에 떨어진 작은 지갑, 테이블에서 튀어나온 손님 팔꿈치까지 인식해 피한다"며 "경쟁력 있는 가격도 장점"이라고 했다.

로봇 1대당 대여비는 월 1500달러(약 175만원) 수준. 한 번 충전하면 200회 이상 서빙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 일본에 100여 대를 공급했다. 이번에 투자한 롯데는 이미 계열 음식점에서 페니를 쓰고 있는 고객사다. 구글 사내 식당에서도 페니를 쓴다. 배달의민족의 서빙 로봇 '딜리 플레이트'도 베어로보틱스가 페니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하 대표는 "이번 투자를 바탕으로 페니 대량 양산(量産)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했다.

베어로보틱스의 공동 창업자들. 왼쪽에서 둘째가 하정우 대표.

하 대표의 창업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 텍사스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구글 본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운명이 갈린 것은 2016년 실리콘밸리에 있는 밀피타스의 한식당 '강남순두부'를 인수하면서다. 그는 "막연히 식당에 서빙 로봇을 도입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개발해 테스트해보고 싶어 아예 가게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가게 운영을 도와줄 지인들이 있었지만, 구글에 다니면서 동시에 순두부집 사장으로 '투잡'을 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 대표는 "주중에는 서빙하고, 주말에는 직접 깍두기도 담그며 14시간씩 요리를 했다"며 "정말 손가락 뼈마디 하나하나 안 아픈 데가 없었는데 그럴수록 서빙 로봇의 필요성을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구글을 키운 미국 광고 시장이 1000억달러(약 117조원) 수준이었는데, 외식업은 그 8배 규모라는 것도 창업을 결심한 이유였다"고 했다.

페니 로봇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 대표는 "종업원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신 "음식 배송과 같은 반복적이고 힘든 업무는 페니에 맡기고 사람은 그 시간에 고객과 더 깊이 소통하고 맛, 서비스와 같은 업(業)의 본질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페니를 도입한 음식점을 조사해 보니 종업원이 고객과 보내는 시간이 40% 늘었고, 고객 만족도 역시 95% 높아져 팁이 후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향후 5년 내 서빙 로봇이 우리 일상에 보편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