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서울 용산구 문배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상가. 도로에서 바로 출입이 가능한 1층에 미용실이 성업 중이다. 미용실은 상가 임대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2층 이상 고층에 입점해온 대표적인 업종이다. 이 건물 1층에는 동물병원도 영업 중이었다. 병원 업종 역시 종전에는 임대인들이 건물 이미지 상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주로 고층에 입점하는 업종이었다.
기존에 상가 2, 3층 혹은 지하에 있던 업종이 1층에 입주하는 사례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의 1차적인 원인은 높아지는 공실률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까지 전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1.7%로 2007년(11.6%)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대소득 수익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 3.97%까지 내려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기준 거래된 상업·업무용 부동산 거래량은 5만7910건으로 전년 거래량 6만 3364건 대비 약 8.6% 감소한 5454건으로 나타났다.
공실률의 급등 배경으로는 내수 침체와 온라인쇼핑으로의 소비 행태 변화가 꼽힌다. 쿠팡 등 소셜커머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굳이 소비자가 오프라인 상가에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상점을 찾아가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업종이 상가의 주 임차 수요로 남게 됐고, 동시에 이들 업종의 임차 시장 내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1층으로 나온 대표적인 업종은 병원이다. 병원은 기존에 2층 이상의 고층 빌딩에 넓은 매장에 입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었지만 최근에는 다르다. 서울 곳곳의 1층 상가에서 영업하고 있는 치과 등 병원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동물병원 역시 동물을 데리고 승강기를 탔을 때 동승자와 벌어질 수 있는 문제 등으로 접근성을 중요시하기 시작하면서 1층에 문을 열고 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최근 실손보험 등 보장이 좋아지면서 일부 병원의 수익이 꽤 늘었다"면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의사가 많아진 것도 의료업종 1층 진출의 한 이유"라고 했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원래는 상가 1층에 병원이 들어와있으면 좋은 상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 임대인들이 병원은 2~3층으로 빼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최근 공실 문제가 심각해 이를 채우려다 보니 중간 정도의 매출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병원이 1층에 입점하게 된 것"이라고 헀다.
미용실도 1층에 입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1인 미용실의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 종전에 미용실 역시 비싼 1층 임대료를 내기보다는 고층에 입점해 넓은 매장에서 여러 명의 직원들을 둔 형태로 운영을 했다. 그렇지만 최근 치솟은 최저임금 등의 요인으로 미용실에 직원을 두기가 어렵게 되자 1인 창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선 대표는 "1층 상가는 고객 접근성이 높지만 면적이 좁은데 이 점이 1인 좌석을 예약제로 운영하는 '나홀로 미용실'의 욕구와 맞는 것"이라며 "임대인 입장에서도 최근 내수가 위축되다 보니 공실을 타개하기 위해 혐오업종이 아닌 이상 임대가 안 된다고 할 이유가 없다"이라고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은행 업종의 경우 온라인거래와 폰뱅킹 등의 영향으로 1층에서 고층으로 올라가는 추세다. 임대인도 상가 1층에 은행이 있으면 안정적인 월 임대료를 확보할 수 있지만, 주말에 영업하지 않아 이때 상가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유인이 적어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윤수 빌사남 대표는 "최근 은행은 고객들의 금융 거래 행태가 바뀌면서 굳이 1층에 없어도 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면서 "오프라인 매장에 직원 수도 많이 줄이고 1층에는 ATM기만 두는 게 추세"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온라인과 폰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90%를 넘어서는 상황이어서 지점 입점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면서 "임대인들도 은행보다는 카페가 들어오면 운영시간이 긴데다 건물도 깨끗해지고 고객들에게 건물을 알리는 광고효과까지 있어 점점 1층 은행을 없애는 추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