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과 공동 개발중인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에서 발을 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015년 12월 말 KF-X 사업 계약을 하면서 KF-X 공동 개발 사업비 중 20%를 부담하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2.5%의 금액만 입금하고 납입을 중단한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측은 KF-X 사업 철수 가능성을 암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국의 사업 부담금을 줄이겠다며 한국과 재협상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가 사업 철수를 선택할 경우, KF-X 사업 주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의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미납금인 1조5000억원이 넘는 개발비를 추가 확보해야 하는데다, 인도네시아가 도입하기로 한 50대의 KF-X 수주도 백지화 되기 때문이다. KFX 생산 대수가 줄어들수록 전투기 1대당 생산비가 늘어난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미 5조원이 넘는 개발비를 투자한 국방부 입장에서도 KF-X 사업 무산을 막기 위해 국회 동의를 받아 추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작년 10월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 2019' 행사에 한국형 차세대 KF-X 전투기 실물 크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KF-X 사업은 40년 이상 된 국내 전투기를 교체하고 우수한 성능을 갖춘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기 위해 2016년부터 시작된 국가 프로젝트다. 인도네시아도 자국의 낙후된 전투기 교체를 위해 사업에 참여했다. 우리 정부가 60%, 인도네시아가 20%, 카이가 20%의 비율로 분담해 KF-X 개발 사업비를 공동 투자했다. 2026년까지 KF-X 개발을 완료하면 우리 공군에 120대, 인도네시아에 50대를 각각 양산할 계획으로 KF-X 개발비(약 8조원)와 양산비(약 10조원) 규모만 총 18조원에 이른다.

◇ 조코위 대통령 방한 앞두고 KF-X 사업 협상단 인도네시아로 급파

30일 조선비즈 취재결과 작년 11월 쯤 한국 국방부 관계자, 카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KF-X 사업 협상단이 인도네시아 정부와 KF-X 사업의 조건 변경 재협상을 위해 현지로 급파된 사실이 확인됐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작년 11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하기 직전이었다.

한국 측이 협상단을 꾸려 직접 인도네시아까지 찾아가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양국 간 합의점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만남은 양국 간 비공개를 원칙으로 비공식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작년 초부터 한국에 내는 KF-X 사업 분담금은 낮추면서, 자국으로의 기술이전은 늘리겠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지난 2018년 9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KF-X 사업 분담금 비율을 20%에서 15%로 축소해 달라며 재협상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인도네시아는 KF-X 전체 사업비 8조8304억원의 20%가량인 1조7338억원을 분담하기로 했지만 작년 1월까지 2020억원만 납부하고 납입을 중단한 상태다. 재협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KF-X 사업 분담금 2200억원을 내고 추가 지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양국 간 사업 재협상에 대한 질문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 밀당 나선 인도네시아…"프랑스 전투기 구매 소문도"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가 프랑스산 전투기 '라팔' 48대를 구매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KF-X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인도네시아가 프랑스산 전투기 구매에 나설 경우 한국과의 KF-X 사업을 통한 신규 전투기 양산이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경제 전문매체 라 트리뷴은 "지난 11일(프랑스 현지시각)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부 장관의 파리 방문은 프랑스산 전투기 구매 협상을 하기 위해 계획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수비안토 장관은 "프랑스의 희망사항"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라팔 전투기 구매에 대한 인도네시아 측 관심을 묻는 질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프랑스는 오래 전부터 인도네시아에 라팔 판매를 추진해왔다. 업계 일각에서는 프랑스가 인도네시아에 KF-X 사업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과 공동개발 중인 KF-X 대신 다른 나라 전투기를 구매할 수도 있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비춰 한국 측과의 재협상을 자국에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공군의 첫 스텔스 전투기인 F-35A.

◇ 인도네시아 철수할까 불안한 카이

인도네시아가 KF-X 사업에서 철수하고 한국만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인도네시아가 미납한 1조5318억원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카이 입장에선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미래 매출원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부족금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2조3860억원의 부채를 가진 카이 입장에서는 추가 자금 투입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국방부 역시 인도네시아의 사업 이탈에 대한 정치적 질타를 피할 수 없다. 국회로부터 1조원이 넘는 국방 예산을 추가로 승인받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도네시아에서 양산하기로 예정된 KF-X 전투기 50대가 생산 계획에서 빠진다는 점이다. 계획한 전투기 생산 대수가 줄어들면 전투기 가격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현재 양산 계획을 토대로 하면 KF-X 1대당 가격은 800억원대로 추정되는데, 인도네시아가 빠질 경우 30% 정도 생산량이 감소, KF-X 가격이 기존 예상가보다 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제조한 스텔스 전투기 F-35A의 가격(7790만달러·한화 918억원)을 넘길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술로 미국산보다 저렴하지만 성능은 뛰어난 한국형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당초 사업 취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카이가 인도네시아 측 사업 개발비 미납금을 부담하는 만큼 전투기 양산 시 가격에 반영할 수 밖에 없고, 인도네시아 발주 물량이 사라지는 만큼 생산량도 줄어 부품단가 등 생산비가 높아진다"며 "결과적으로 KF-X 전투기 가격을 높이게 돼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 공군이 공급받을 KF-X 120대 가격도 같이 오르게 돼 예정한 예산 1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