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취항하고 있는 국내 6개 저비용항공사(LCC) 예약 센터는 30일 고객들의 예약 취소 요청을 처리하느라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다. 설 연휴부터 시작된 예약 취소 요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 폐렴) 사태가 악화하면서 급증하고 있다. LCC 업체 관계자는 "여행사와 개인 승객들의 중국행 비행 취소 요청이 밀려와 다른 업무는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LCC 업계가 출범 15년 만에 최대 위기다. 지난해 일본 여행 보이콧 운동으로 1차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우한 폐렴 사태가 2차 충격을 가하면서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저비용항공은 일본·중국 등 근거리 노선 항공권을 싸게 많이 파는 박리다매(薄利多賣)에 의존했는데, 양대 노선 승객이 동시에 줄어들면서 영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신규 LCC 3곳에 신규 면허를 내주면서 '과잉 경쟁'으로 수익성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이렇게 최악의 악재가 연달아 터진 적은 처음"이라며 "우한 폐렴 사태로 항공업계 구조조정이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LCC 중국 노선 약 58% 운항 중단
우한 폐렴 사태로 LCC 업계의 중국 노선 운항 중단은 급증하고 있다. 30일까지 제주항공이 12편 중 6편, 진에어와 에어서울은 각각 2편 전부, 티웨이항공은 6편 중 3편, 에어부산은 9편 중 5편, 이스타항공은 7편 중 4편에 대한 운항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LCC 업계 전체 중국 노선 58%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것이다. 에어부산은 이와 별도로 부산~옌지 노선을 1일부터 감편한다.
LCC 업계의 속은 타들어간다. 지난해 국내 항공사의 일본 노선 여객은 전년 대비 11.6% 감소했고, 노선 수는 일본 여행 보이콧 운동 이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업체들은 동남아나 괌 등으로 노선을 다변화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 이익 개선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5월 5년 만에 중국 노선 운수권을 신규로 배정받은 LCC 5개사(제주항공·티웨이항공·에어부산·이스타항공·에어서울)는 중국 노선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노선 여객은 전년 대비 14.4% 증가하며 LCC 업계에 생명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우한 폐렴으로 연초부터 개점휴업 상태가 된 것이다. LCC 업체 임원은 "일본 승객이 줄어든 걸 보충하기 위해 동남아와 괌 항공권을 원가 이하로 파는 출혈경쟁을 벌여왔다"며 "이 판국에 유일한 활로였던 중국 노선까지 비행기 절반 이상을 못 띄우면서 버티기 힘든 지경"이라고 했다.
◇이 와중에 올해 LCC 2곳 추가 취항
그동안 LCC 업계가 무리하게 몸집을 늘린 것도 자충수로 지적된다. 일본 보이콧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 1~2년간 반짝 호황이 이어지자 LCC 업계는 작년 한 해에만 항공기를 19대나 새로 도입했다.
게다가 근시안적인 정부의 LCC 면허 남발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토부가 신규 면허를 내준 플라이강원이 작년 11월 취항한 데 이어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가 올 3월과 9월에 각각 영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업체가 난립하며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실제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미국, 일본, 중국은 LCC가 각각 9개, 8개, 6개인데 반해 우리는 총 9개에 이른다.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LCC 업계 전체는 지난해 2·3분기 업체별로 100억~20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다음 달 발표하는 4분기 실적 또한 적자가 유력하다. 영업을 시작한 지 석 달도 안 된 플라이강원도 노선 탑승률이 40~60%대에 그치면서 적자에 빠졌다. 올 1분기도 우한 폐렴 사태 여파로 실적 개선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견디다 못한 제주항공은 오는 3월부터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신청받아 무급휴가를 실시한다. 지난달 이스타항공 인수를 발표한 제주항공이 아직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자 업계에선 "자금 사정 악화, 불투명한 업황으로 인해 인수 자체를 재검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장기 전략에 기반한 항공 업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병재 상명대 교수는 "항공업계가 수요 대비 공급이 초과된 상태에서 각종 외부 악재까지 겹쳐 메르스(2015년) 때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항공업계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장기적 전략 없이 외부 요인 때문에 급하게 인수·합병이 진행된다면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